유아 기저귀로 큰 회사 “유아→성인용 포트폴리오 정리”
지난달 말 일본의 대형 제지용품 기업인 오지(王子) 홀딩스 산하 오지네피아가 ‘종이 기저귀 사업’을 종료한다고 발표했다. 1987년 어린이용 종이 기저귀를 처음 생산·판매한 이 회사는 ‘겡키’, ‘화이토’ 등 인기 브랜드를 운영하며 일본 내 관련 시장에서 34%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시장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며 연간 4억 장의 제품을 생산해 왔지만, 이 회사는 올 9월 자국용 어린이용 종이 기저귀 출하를 중단한다. 국내 사업은 성인용 기저귀 부문에 집중하고, 어린이용은 일본이 아닌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등 시장 확대가 전망되는 해외로 눈을 돌린다. 이 같은 결론의 이유는 명확하다. 일본에서 매년 태어나는 아이 수가 현격하게 줄어들면서 지속적인 수익 확대의 전망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고령 인구증가로 성인용 기저귀 수요는 계속해서 늘고 있다. 돈 되는 곳에 사람도 기업도 몰리는 게 시장. 오지네피아의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은 일본 ‘저출산 고령화’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급속한 고령화에 성인용 기저귀 생산·쓰레기↑
2일 NHK 등에 따르면 저출산 고령화의 영향으로 일본 내 성인용 기저귀 수요가 급증하고, 이로 인해 ‘폐 기저귀’ 처리가 골칫거리로 부상하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된 일본에서는 고령자용 기저귀 생산량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 일본 총무성에 따르면 일본의 총인구에서 65세 이상 고령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9월 기준 29.1%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아는 그만큼 성인용 기저귀 수요자가 많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실제로 일본 위생재료공업연합회 조사에서 성인용 기저귀 생산량은 최근 10여 년간 1.6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성은 “저출산의 영향으로 어린이용 종이 기저귀 생산은 주는 반면, 성인용은 증가 폭이 크다”고 설명했다.
사용이 많아지면서 발생하는 문제가 바로 폐기저귀 처리다. 유엔환경계획보고서를 보면 세계에서 소각·매립 처분되는 종이 기저귀는 분당 30만 장 이상이다. 일본에서는 일반폐기물에서 폐(사용 후) 기저귀가 차지하는 비중이 2015년 최대 4.8%(210만 톤)이었으나 2030년에는 이 수치가 7.1%(최대 261만 톤)로 뛸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기저귀에 배설물 흡수를 위한 ‘고분자 흡수제’가 사용된 경우 부피가 4배 정도 부풀어 오르고, 흡수제에 포함된 수분의 영향으로 소각하는 데 시간이 더 걸린다. 태우는 데 긴 시간이 걸릴수록 온실가스를 많이 발생시켜 환경에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
“태우기엔 양 많고, 타는 시간 오래 걸려”
지차체·기업 폐 종이 기저귀 재활용 분주
지차체·기업 폐 종이 기저귀 재활용 분주
이처럼 처리 문제가 골칫거리로 부상하면서 일본 환경성과 각 지자체는 기저귀 재활용 등 해결방안 모색에 나섰다. 치바현 소재 기업인 ‘샘즈’는 원래 천 기저귀 세탁을 다루는 곳이었으나 이 경험과 기술을 살려 종이 기저귀 재활용 사업에 나섰다. 인근 5개 고령자 시설에서 하루 1~2톤의 폐 기저귀를 회수해 공장 전용 기계에 투입하고, 특허 기술로 소독·세척하면 흡수제가 분리된다. 이후 기계에서는 남은 플라스틱과 펄프가 나오는데, 펄프는 소독해 골판지 등의 원료로 쓰고, 플라스틱은 공장에서 사용하는 고형 연료로 쓰인다.
다만, 재활용은 소각보다 돈이 많이 들고, 일반 가정에서 기저귀를 회수하는 데 현실적인 한계가 있는 만큼 지자체·기업의 연계가 중요하다는 게 해당 기업 관계자의 설명이다. 일본 환경성은 연계를 통해 30여 곳 수준인 종이 기저귀의 재활용 실시·검토 지자체 수를 2030년까지 100곳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대형 기저귀 제조업체 중 재활용 기술 개발에 뛰어드는 곳도 있다. ‘유니참’은 가고시마현의 한 지자체와 제휴해 ‘폐 기저귀 회수함’을 설치, 이렇게 모은 기저귀를 분해·소독해 다시 종이 기저귀로 제품화하고 있다. 또 다른 업체 ‘카오’도 교토대, 에히메현 지자체들과 연계해 보육시설에 열분해 장치를 설치해 기저귀 부피를 20분의 1로 줄이고 향후 자원으로 재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2072년 인구 절반이 고령자 韓…딴 세상 이야기일까
기저귀가 더는 ‘유아 시장 대표 상품’이 아닌 현실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연도별 합계 출산율은 2021년 0.81명에서 지난해 0.72명으로 떨어졌고, 올해는 이보다도 더 낮은 0.68명으로 전망된다. 아기 울음소리가 줄어들면서 총인구에서 65세 이상 고령층이 차지하는 비중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한국 총인구 5171만 명 중 65세 이상은 18.2%였는데, 이 수치는 50년 후(2072년) 47.7%로 절반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유아 용품 기업의 포트폴리오 조정은 물론, 소각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노인 시장 필수 상품’의 이야기가 이웃 나라만의 이야기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