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대통령은 미일정상회담 등을 앞둔 2일(현지 시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1시간 45분간 통화하면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갈등 등 글로벌 현안을 비롯해 대만과 남중국해 문제, 첨단기술 수출통제 등 양측이 대립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논의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요청으로 이뤄진 이번 통화와 관련해 백악관과 중국 관영통신사 모두 “양 정상이 솔직하고 심도 있게 의견을 교환했다”고 전했다. 두 정상이 직접 소통한 것은 지난해 11월 대면 정상회담 이후 약 5개월 만으로 미국 대선이 열리는 올해 들어서는 처음이다.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은 이날 민감한 현안을 두고는 날카롭게 대립했다. 시 주석은 대만 독립 문제와 관련해 바이든 대통령의 분명한 의사 표시를 촉구했고 미국의 수출통제에 대해서는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제거)이 아니라 위험 조장”이라며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반면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의 선진 기술이 미국의 국가 안보를 약화시키는 데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계속 취할 것”이라며 첨단기술 분야에서의 통제를 지속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두 정상은 이 밖에도 미국 하원에서 통과된 틱톡 매각 법안, 중국의 사이버 해킹, 중국의 러시아 방위산업 지원 등과 관련해 아슬아슬한 논의를 이어갔다.
이처럼 양국 간에 갈등 요소가 산적해 있으나 이번 통화는 두 정상이 소통을 이어가며 경쟁을 책임 있게 관리하려 노력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정치의 해를 맞아 양국 관계를 안정시키려는 중요한 이정표”라고 전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미국의 재닛 옐런 재무장관과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도 차례로 중국을 찾아 고위급 회담을 이어간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과의 직접적 마찰은 피하면서도 다음 주부터 활발한 정상 외교를 통해 ‘중국 에워싸기’ 전략에 나선다. 우선 이달 10일로 예정된 미일정상회담이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중국 견제’와 ‘동맹 강화’ 기조는 7월 워싱턴DC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까지 이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바이든 대통령 입장에서는 대선 전에 글로벌 리더십을 대내외에 보여줄 좋은 계기가 마련되는 셈이다.
미일 양국은 정상회담 후 발표할 공동성명에서 중국을 겨냥한 ‘미일 전략적 협력의 신시대’를 공표할 방침이라고 이날 요미우리신문 등이 전했다. 미일 양국이 방위 장비 공동 생산 체제를 만들고, 주일미군사령부의 지휘 통제 기능을 대폭 강화하며, 우주 분야에서의 협력을 확대하는 방안 등이 논의된다. 다음 날 이어지는 미국·일본·필리핀 3국 정상회의에서는 중국의 강압 행위에 맞선 남중국해 공동 순찰 계획이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행정부는 7월 나토 정상회의에서 한미일정상회의를 개최하는 방안도 조율 중이다.
한편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이스라엘의 오폭으로 가자지구에서 국제 구호단체 직원들이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격노하고 가슴이 무너진다”며 이스라엘에 대한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강경 기조가 이어지는 가운데 중동 사태는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 도전에 외교적 장애물이 되고 있다고 미 언론들은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