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올해 대폭 삭감했던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을 내년에 다시 복원하는 것을 넘어 역대 최대 수준으로 늘리기로 했다. 이에 내년 예산 규모는 올해보다 두 자릿수 증가해 기존 역대 최대였던 지난해 약 31조 원을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예산 확대와 동시에 예산 배분 방식의 개선을 통해 R&D 지원의 비효율을 없애는 ‘R&D 구조조정’ 역시 병행하겠다는 방침이다.
박상욱 대통령실 과학기술수석은 3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에서 브리핑을 열고 “내년 (정부) R&D 예산을 대폭 증액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증액 규모는 밝히지 않았지만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을 비롯해 경제 부처와 과학기술혁신본부 등이 목표로 하는 수준에 대한 공감대는 역대 최고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R&D 예산은 매년 증가해 지난해 역대 최대인 31조 1000억 원을 기록했으나 올해 26조 5000억 원으로 대폭 삭감됐었다. 박 수석은 “유례없이 빠른 기술 변화의 파고 속에서 개혁 작업에만 매달릴 수는 없다”며 증액 계획의 배경을 설명했다.
정부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글로벌 협력 강화 등 ‘R&D 구조조정’ 작업을 본격화한 만큼 내년에는 예산 확대 기조를 되살려 R&D의 양적 확대와 함께 질적 성장을 모두 꾀한다는 취지다. 앞서 정부는 올해 정부 R&D 예산을 지난해보다 14.8% 삭감하는 대신 반도체, 인공지능(AI), 양자 등 핵심 기술 개발과 대형 연구에 지원을 집중하는 정부 R&D 혁신 방안을 마련하고 추진 중이다. 박 수석은 “일각에서 말하는 (예산) 복원은 아니다”라며 “R&D가 기존에 달리던 트랙이 아닌 새로운 고속 선로로 바꿔 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실패 가능성이 크더라도 반드시 도전해야 하는 ‘혁신·도전형 R&D’ 사업 예산을 내년 1조 원으로 늘리고 중장기적으로는 정부 R&D 예산의 5%까지 확대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는 “AI, 첨단 바이오, 양자 등 이머징(신흥) 기술 관련 연구가 혁신·도전 사업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R&D다운 R&D’를 만드는 지원 개혁 방향을 네 가지로 제시했다. 필요시 신속하게 지원하고 연구자를 믿고 지원하되 투명하게 공개하며 부처·글로벌 장벽을 허물고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아울러 ‘퍼스트 무버’ R&D 체계를 구축하고 기초연구 지원을 통한 인재 양성을 꾀할 방침이다. R&D 예비타당성조사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평가자 마일리지’ 제도도 도입하기로 했다. 블록펀딩을 통한 대학 부설 연구소 경쟁력 강화도 추진된다.
이창윤 과기정통부 1차관도 이날 기자들을 만나 “(R&D 예산의) 양적 팽창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구조조정 취지에 잘 부합해야 한다”며 “기초 원천 연구, 민간보다는 공공이 해야 할 차세대 R&D, 젊은 이공계 과학자 양성 등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 차관은 구체적으로 이공계 인재 유치, 정부출연연구기관 혁신, 과학기술특성화대학 혁신, 글로벌 협업, 민관 협업 등 네 가지 중장기 대책을 마련하고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과기정통부는 최근 의대 정원 증원 방침에 따라 인재 이탈 우려가 커진 이공계 분야를 활성화하기 위해 교육부와 함께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우수 인재 확보 및 육성 방안 마련에 나섰다. 아울러 출연연의 융합 연구를 위한 ‘글로벌톱전략연구단’ 사업을 1000억 원 규모로 6월부터 착수하며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 4대 과학기술원 역시 융합 등 혁신을 위한 ‘과기특성화대학 혁신 이니셔티브’를 상반기 중으로 발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