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도서 유통사인 교보문고가 발표한 주간 책 판매량 베스트셀러 순위를 보면 한국 작가의 작품은 5개, 외국 작가의 번역 작품이 5개였다. 외국 작가로서 톱10에 오른 5가지 책은 ‘불변의 법칙(미국)’,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자(일본)’, ‘일류의 조건(일본)’, ‘사카모토 데이즈(일본)’,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미국)’ 등이다. 여기에 ‘마흔에 읽는 (독일사람) 쇼펜하우어’까지 포함하면 외국 내용 책은 모두 6권으로 늘어난다.
다른 도서 유통사인 예스24가 집계한 베스트셀러 수치는 더하다. 베스트셀러 10위권에서 ‘쇼펜하우어’를 포함해 외국 책은 무려 8권이다. 교보문고와 비교해 베스트셀러에 ‘삼체(중국)’, ‘나를 소모하지 않는 현명한 태도에 관하여(독일)’, ‘이처럼 사소한 것들(아일랜드)’ 등 3권이 더해지고 ‘사카모토 데이즈’ 1권이 빠졌다. 특히 예스24 상위 1~5위가 모두 외국 작가의 번역 작품으로 채워졌다.
해외의 사상과 이론이 한국 독서계를 지배한 것은 어제오늘이 아니다. 과장을 좀 보태면 단군왕검이 우리의 첫 국가 고대 조선(이른바 ‘고조선·古朝鮮’)을 세운 이후 계속된 경향이라고도 할 수 있다.
현재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는 생각도 많은 경우 외국산이다. 몰론 그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생각의 교류는 늘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외래의 사상과 이론은 토착화돼 우리의 사상과 이론이 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우리 국민의 해외 여행객이 방한 외래 관광객보다 훨씬 많은 것과도 비슷하다. 해외 여행은 한편으로는 해외 지식의 습득도 된다.
하지만 이것도 정도의 문제다. 가장 최근의 조사로 문화체육관광부의 2021년 기준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2021년 우리 국민 성인의 독서율(종이책·전자체·오디오북 종합)의 독서율은 47.5%로, 직전 조사인 2019년(55.7%)보다 무려 8.2%포인트가 오히려 줄어들었다. 즉 “국민의 절반 이상이 1년에 책 1권도 읽지 않는다”는 의미다. 독서자·비독서자를 합쳐 우리 국민의 연간 평균 독서량은 2021년 4.5권으로 역시 2019년(7.5권)보다 크게 떨어졌다.
충격적인 내용이지만 이 발표가 당시 큰 반향을 부르지는 못했다. 조사가 2년 마다 진행되니 2023년 기준 수치는 올해 나올 듯하다. 독서율이 크게 회복될 가능성은 적다. 이러니 책이 안 팔린다는 출판계의 우려가 가슴에 절절하다.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은 곧 책을 생산하지도 않게 된다는 의미일 수 있다. 책을 쓰지 않으면 사상도 이론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에 따라 우리 나라가 영원히 ‘지적 식민지(intellectual colony)’에 갇혀 있을 수 있다는 것이 ‘기 나라 사람의 헛된 걱정거리(기우)’가 아니다.
최근 ‘책’에 대한 소식은 정부 정책이든 신문·방송이든 사회운동이든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나오는 이야기라야 영화나 드라마, 가요, 게임, 스포츠 등이다. 분명한 것은 최근의 ‘K컬처’ 인기가 이제까지 쌓인 지식을 바탕으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새로운 지식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이런 콘텐츠의 미래도 장담하기 어렵다.
또 최근 이른바 ‘K북’의 해외 진출에 대한 목소리는 높다. 다만 국내에서 책이 안 팔리니까 해외에서 팔자는 이야기는 인정받을 수 없다. 국내에서 잘 팔리는 책이 해외에서도 인기를 끌 수 있다.
우리의 사상과 이론을 포함한 출판의 생산과 소비 선순환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대한출판문화협회의 ‘출판 생산 통계’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신간 발행 종수 6만 1181종, 발행 부수 7291만 부에 그쳤다. 2021년 대비 각각 5.4%, 8.8% 감소한 수치다.
지난 1990년(2억 4183만 부) 정점을 찍은 후 매년 감소하던 발행 부수는 지난 2018년 1억 173만 부로 반짝 상승한 후 이듬해부터 2022년까지 다시 4년 연속 감소세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올해 ‘건전재정’ 정책에 따라 정부 출판·독서 분야 예산은 429억 원에 그치며 작년 대비 10%나 삭감됐다.
지식에 관한 무역수지가 흑자를 기록할 날이 올 수 있을까. 수입 책보다 수출 책이 더 많을 날 말이다. 우리나라의 사상과 이론이, 적어도 특정 주제에서라도 글로벌 주류가 될 수 있는 날 말이다. 아니면 최소한 ‘지적 독립국’ 기대는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