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 중심의 사업구조에서 라이프 스타일 솔루션 기업으로 도약하려는 LG전자(066570)가 이를 위해 자사 핵심 인력을 집결해 연구 역량을 고도화한다. 인공지능(AI) 기술로 가전 시장 지형이 급변하면서 분산된 인력을 모아 연구 칸막이를 없애고 계열사와도 시너지를 강화하기 위해서다.
8일 업계에 따르면 LG전자는 10월 서울 마곡 LG사이언스파크 2단계 4개 동(W7~W10) 준공을 예정하고 있다.
기존 W1~W6동 옆에 세워지는 이 건물에는 LG전자 소속 연구개발(R&D) 인력들이 2025년 1월부터 들어갈 계획이다. 서초 R&D 캠퍼스, 양재 R&D 캠퍼스, 가산 R&D 캠퍼스 등에 소속된 2500명 안팎의 핵심 R&D 직원들이 대상이다. LG전자의 중장기 기술 혁신을 담당하는 회사 최대 R&D 조직인 최고기술책임자(CTO) 부문 인력 890명을 더해 디자인경영센터 인력 590여 명, CX센터 160여 명, SW센터, B2B선행기술센터 등이 포함된다.
이번 이동은 회사가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는 흐름과 맞물려 있다. 회사는 가전제품에 치우친 기존 사업 영역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최근 기업간거래(B2B) 사업, 소프트웨어(SW) 플랫폼, 관리 서비스를 결합한 구독 사업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LG전자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가전 수요가 오랜 기간 바닥을 치며 어려움을 겪었지만 가전 구독 사업이나 B2B·SW 영역을 확대하며 활로를 모색해 왔다. 조주완 LG전자 최고경영자(CEO)는 CES 2024에서 자사 스마트TV 플랫폼 웹OS의 매출을 연말까지 조 단위로 늘리고 올해 집행할 투자금 상당수를 B2B 등 신사업에 할당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회사는 신사업 성과에 힘입어 1분기 기준 최대 매출을 올렸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AI로 인한 기술 지각변동도 주요 동인이다. 초거대 AI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달하면서 AI 기능과의 궁합이 가전 품질과 소비자 선택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LG전자는 자사 TV 제품의 특징으로 AI 기능을 전면에 내세웠다. 최신 AI 프로세서 ‘알파11’을 탑재해 화질을 보정하고 처리 속도를 높인 것이다. 최근 선보인 사운드바의 핵심 역시 단연 AI 기술이다. 최적의 음향을 구현하기 위해 AI를 통해 가정집 공간 구조를 분석하고 음향에서 음성과 배경음을 구분하는 기술이 들어갔다. LG전자는 물론 경쟁 회사들도 최근 내놓은 신제품을 광고할 때 하나같이 AI 기술을 강조하고 있다.
LG전자가 각지에 분산돼 있던 핵심 두뇌들을 한곳에 집결하는 것도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에 한층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다. 연구 인력들이 지리적으로 가까워지면 분야 간 융·복합 연구를 보다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마곡은 또 LG그룹 계열사의 R&D 인력들은 물론 그룹 전체에서 AI 연구를 주도하는 LG AI연구원도 있어 AI를 중심으로 시너지를 내는 데도 유리하다.
LG그룹 관계자는 “마곡에서는 사이언스파크가 주체가 돼 기술협의회라든지 이노베이션카운실 같은 협의체가 운영되며 계열사 간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정기적으로 고민하는 기회가 많다”며 “특정 분야나 기술에 대해 글로벌 기업의 전문가나 대학 교수들을 초빙해 계열사 인력이 함께 모여 의견을 묻고 방향을 설정하는 식으로 진행된다”고 말했다.
마곡을 LG그룹 연구의 중심지로 만드는 것은 구본무 선대 회장부터 그려온 밑그림이기도 하다. 마곡 LG사이언스파크는 구 선대 회장의 주도 아래 그룹이 4조 원을 투자하며 융·복합 연구와 핵심·원천기술 개발 등을 수행할 전진기지로 거듭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AI 기술 발전 등으로 이제는 제품 기업들도 SW 경쟁력에서 뒤떨어지면 언제든 낙오되거나 플랫폼 기업에 종속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다”며 “이러한 변화에 맞춰 그룹의 역량을 최대한 집중해 기술 흐름에 대비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