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기후로 인한 작황 부진 등으로 ‘먹는 기름’ 가격이 고공 행진하고 있다. 각종 가공식품부터 세제·화장품 등 원료로 쓰이는 팜유 가격이 2년 만에 최고가를 경신하는가 하면 올리브유도 일 년 새 가격이 60% 넘게 뛰면서 유럽에서는 ‘기름 도둑’까지 등장했다.
8일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팜유의 국제 지표가 되는 말레이시아 시장의 팜유 선물 가격은 3일 장중 톤당 4443링깃(약 126만 4000원)을 찍으며 2022년 11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5일 가격이 4343링깃으로 내려오기는 했지만 올 들어 가격이 17%나 뛴 셈이다. 팜유 주요 산지인 말레이시아의 이상기후로 비정제 팜유(CPO·Crude Palm Oil) 생산이 쪼그라든 탓이다. 말레이시아 팜유위원회가 지난달 공표한 ‘2월 CPO 생산량’은 전월 대비 10.2% 줄어든 126만 톤으로 지난해 4월 이후 10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지난해 말레이시아를 강타한 기록적인 폭우와 홍수로 팜유 열매(기름야자 열매) 농사가 피해를 입은 데 따른 것이다.
최근 무섭게 뛰는 국제유가도 팜유 가격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식물성 기름인 팜유는 주로 소비재 원료로 쓰이지만 바이오 연료로도 사용되는 까닭에 국제유가 시세의 영향을 받는다. 고유가 속에 팜유를 사용한 바이오디젤 수요가 커지면서 팜유 가격이 덩달아 뛰고 있다.
가격표에 제동이 걸리지 않는 것은 올리브유도 마찬가지다. 올리브 산지인 스페인 등 지중해 연안에서 2년 연속 가뭄이 발생하면서 올리브 수확량이 급감한 탓이다. 국제올리브협회(International Olive Council)에 따르면 스페인 남부산 비정제(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 가격은 3월 기준 100㎏당 864.5유로로 전년 동기 대비 65%나 치솟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유럽의 주요 상점에서는 올리브 오일 절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올리브유의 소비자 가격이 ㎏당 약 5유로에서 최대 14유로까지 뛰면서 기름 도둑은 물론 훔친 기름을 암시장에서 파는 기현상까지 생기고 있다. 이에 스페인의 대형 상점 등에서는 올리브유 병을 서로 연결해 두거나 최고급 주류에만 적용했던 보안 태그를 부착하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 가격 부담은 다른 유럽 국가도 비슷하다. 유럽연합(EU) 통계 당국인 유로스태트에 따르면 올 2월 기준 EU 올리브유 소비자물가지수 평균은 전년 동기 대비 50.4%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