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미술 다시보기] 비너스처럼 표현된 이브

심상용 서울대학교 미술관장






알브레히트 뒤러의 ‘아담과 이브’는 2개의 나무 패널 위에 유화로 그려졌다. 아담은 사과가 달린 나뭇가지와 잎으로 자신의 성기를 가리고 있고 이브는 한 손에는 사과를, 다른 한 손에는 화가의 서명판을 들고 있다. 능숙한 음영 표현으로 섬세하게 표현된 두 남녀의 몸에는 뒤러가 4년간 탐구해 획득한 이상적인 비례가 적용됐다. 필립 드 몬테벨로 전 메트로폴리탄미술관장의 평이다. “이보다 더 잘생긴 아담이나 사랑스러운 이브를 이전에 본 적이 있나요? 나는 이 비너스처럼 표현된 이브를 좋아합니다.” 블룸버그뉴스의 수석미술평론가 마틴 게이퍼드는 심지어 이브가 독일산 맥주를 대접하는 장면을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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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러의 ‘아담과 이브’에는 인류의 조상이 사탄의 꾐에 넘어간 어리석은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시대정신이 투영돼 있다. 이 남녀가 낙원에서 추방당할 이유는 없다. 원죄의 비참성이 미(美)와 관능의 탐닉 뒤로 가려진다.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한껏 누릴 기대감으로 벅찬 르네상스인, 자유로운 현생 인류의 탄생이다.

“미술은 더 이상 아름다운 꽃밭에 머무르기를 원하지 않는다.” 지난 20세기 전위주의·반미학·해체주의 미술의 귀에 익은 선언이다. 하지만 문제는 더는 벗어날 ‘아름다운 꽃밭’이 남아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 시대의 지배 물질은 꽃이 아니라 이산화탄소·플라스틱·콘크리트다. 방사성 물질들도 잊지 말자. 이 시대의 지질학적 특징은 한 해 600억 마리가 소비되는 닭고기의 닭뼈다. 미국 세인트루이스대의 엘레오노어 스텀프는 매일 조간신문이 실어 나르는 소식들에서 악(惡)의 현존을 확인한다. 마침내 인간의 멋진 신세계가 도래했건만 르네상스인의 미래는 장밋빛과는 거리가 멀다. 근현대 정신의 탯줄인 르네상스 정신의 결말도 이에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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