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어느 분야의 예산을 아끼기 시작하면 (이후) 하루아침에 따라가기는 힘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패트릭 크래머(사진) 독일 막스플랑크연구회(MPG) 회장은 11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최로 열린 ‘글로벌 과학리더 포럼’에 참석해 “국가의 지속적인 과학기술 투자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우수 인재들의 의대 쏠림으로 인해 이공계 기피 현상이 심해지고 있는 데다 올해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이 지난해보다 14.8% 삭감돼 과학기술인들의 사기가 떨어진 상황에서 내년도 R&D 예산 복원을 시작으로 꾸준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크래머 회장은 “과학 연구는 장기적으로 진행되는 만큼 안정적인 투자가 이뤄진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며 “오늘날 세계적인 (R&D 예산 삭감) 현상은 기술을 맹신하는 일차원적 사고에 갇힌 결과”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 같은 사고는 위험하며 어떤 과학적 발견이 있을지 아직 모르기 때문에 우리가 세계를 다채롭게 이해하려면 다양한 연구가 진행돼야 한다”며 “응용기술에 비해 당장 경제적 성과가 나지 않는 기초과학 역시 꾸준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러면서 “다만 싱가포르처럼 작은 나라에서는 (예산 한계로) 특정 분야에 투자를 집중하는 게 맞다”고 덧붙였다.
크래머 회장은 한국의 기초과학 경쟁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는 미국 경제 전문 매체 블룸버그의 ‘블룸버그 혁신지수’를 인용해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국가”라며 “또 이스라엘을 제외하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투자 비중이 가장 큰 국가이자 다양한 글로벌 인재가 모이는 자석과도 같은 곳”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한국 연구 기관들과 지난 5년간 2400건의 연구 성과가 있었던 만큼 활발한 연구 협력이 가능하겠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크래머 회장은 최근 유럽연합(EU)의 세계 최대 규모 다자간 연구 프로그램인 ‘호라이즌 유럽’에 한국이 아시아 최초로 준회원국으로 합류한 것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EU 권역 외 국가에서 (가입하는 사례는) 드문데 그만큼 한국이 기초과학 분야에 많은 노력을 쏟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며 “이는 다음 세대로 혁신을 이어주기 위해 중요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양국 과학자가 서로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파트너십을 맺음으로써 혼자서는 해낼 수 없는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MPG는 세계 최고의 기초과학 연구 기관이자 단일 기관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해 ‘노벨상 사관학교’로 불린다. 지난해 기초과학 지원에 250억 유로(약 37조 원)의 예산을 썼다. 한국의 기초과학연구원(IBS)과 나노의학 분야 국제 공동 연구 센터를 설립하는 것을 시작으로 국내 다양한 기관과 기초과학 연구 협력을 확대할 방침이다. 크래머 회장은 “향후 나노의학뿐 아니라 기후·뇌과학·인공지능(AI) 등 여러 분야에서 양국 과학자 간 협력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