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으로는 사상 최초로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한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은 정권 견제를 넘어 국정운영의 한 축으로 민생을 챙길 막대한 책임감도 함께 부여 받았다. 정부 정책과 예산·인사 등 국정 전반에 대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민주당을 필두로 야권이 윤석열 대통령이 내민 손을 잡아 시급한 민생 문제를 해결해야만 ‘수권 정당’으로서 능력을 인정받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특검 정국 조성에만 힘을 쏟으며 ‘워치도그(감시견)’ 역할에 머무른다면 민생을 내팽개쳤다는 비판에 직면할 것이라는 경고도 나왔다.
정치 전문가들은 11일 끊어진 여야간 대화 채널 가동을 위해 대통령과 여당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야당 역시 여당의 노력에 적극 화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민주당이 175석을 얻었다고 해서 대통령실이나 여당의 대화 요청을 거부하는 것은 총선 여론을 반영하지 못하는 것” 이라며 “야당이 여당과 마주 앉아 국정운영 방향에 변화를 이끌어내야 국민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등 야권이 2년 뒤 치러지는 지방선거와 3년 뒤 대통령 선거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건설적인 대안을 제시하며 집권 능력을 증명해야 한다는 조언도 뒤따랐다. 박 평론가는 “야당에 남은 목표는 이제 정권 교체” 라며 “정권 교체를 위해서는 여당에 대화를 제의하고 국민이 필요한 것을 해결하는 게 가장 큰 이득”이라고 말했다.
이재묵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역시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정치권이 흘러간다면 나라가 두 동강 날 상황”이라며 “야당이 여당과 협력할 수 있는 주제들을 먼저 제시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제언했다.
정부와 의사 단체가 간극을 좁히지 못하고 있는 의대 정원 확대 문제를 야당의 협치 시험대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 또한 나왔다. 박 평론가는 “현재 정치권이 풀어야 할 가장 시급한 문제는 전공의들의 병원 복귀”라며 “민주당이 대안을 내놓고 중재자의 역할을 한다면 의대 증원 문제가 급물살을 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야권이 민생경제 법안의 신속한 처리를 주도해야 한다는 의견 역시 다수였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21대 국회에서 처리하지 못한 민생 법안들이 많다”며 “현재 고물가 등으로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만큼 속도감 있게 법안을 처리하기 위해 여야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열린 민주당의 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서 민주당 지도부가 보여준 낮은 자세는 협치의 가능성을 엿보게 했다는 평가다. 이재명 대표는 “당선의 기쁨을 즐길 정도로 현재 상황이 녹록지 않다” 며 “선거 이후에도 늘 낮고 겸손한 자세로 주권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해찬 상임공동선거대책위원장도 “이번 선거는 국민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정치인들이 다시 한번 되짚어보는 좋은 기회가 됐다고 생각한다”며 “우리 야당도 이번 승리에 도취해서 오만하면 절대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21대 국회가 마무리되기 직전 여권이 민감해 하는 채상병 특검법 등의 본회의 표결이 예정돼 있어 22대 국회 역시 야당의 특검 공세와 여권의 방패인 대통령 거부권으로 강 대 강 대치 상황을 이어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권칠승 민주당 대변인은 “채상병 특검법이 이미 본회의에 올라가 있다” 면서 “가능하면 5월 마지막 국회에서 (처리)할 수 있으면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