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증원을 둘러싼 마찰로 전공의가 이탈한데 따른 의료 공백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치료받을 병원을 찾지 못해 헤매다 숨지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 환자들 사이에서는 사고의 배경으로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가 있는 게 아니냐는 주장까지 나온다. 정부는 진료보조(PA) 간호사의 업무 역량을 높이는 쪽으로 대책을 추진 중이지만, 의료계는 여전히 의대증원 원점 재검토 없이는 대화조차 어렵다는 입장이다.
18일 의료계에 따르면 경남 김해에 사는 60대 A씨가 지난달 31일 오후 4시경 밭일 도중 가슴 통증으로 119에 신고했고, 소방당국은 경남 지역 병원 6곳에 연락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의료진 부족 등이 이유였다. 결국 이날 오후 5시 반 무렵 부산의 한 2차 병원으로 옮겨진 뒤 각종 검사를 거쳐 대동맥박리 진단을 받았다. 그는 부산의 한 대학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수술 준비 중 숨졌다. A씨의 가족은 “이번 의료 공백으로 인해 혹시 모를 생존 가능성을 저버린 것은 아닌지 원통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달 11일에도 부산에 사는 50대가 급성 대동맥박리 진단을 받은 뒤 병원 10곳 이상에서 진료가 어렵다는 이유로 수용을 거부당한 끝에 사망했다. 앞서 지난달 충북 보은군에서는 도랑에 빠진 33개월 아이가, 충북 충주시에서는 전신주에 깔린 70대 여성이 병원을 돌다 끝내 목숨을 잃었다.
정부는 길어지는 의료 공백에 대한 대응으로 의사의 일부 진료업무를 하도록 한 PA 간호사들의 업무 역량을 높이기로 했고, 보건복지부는 이날부터 PA 간호사 대상 교육에 들어간다. 대상은 새로 배치될 예정인 PA 간호사, 경력 1년 미만의 PA 간호사, 그리고 이들의 교육 담당 간호사 등이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이번 교육은 시범사업으로, 향후 8개 분야 80시간의 표준 교육과정을 개발해 다음 달부터 정규 교육과정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복지부는 또 의료개혁 정책 토론회의 하나로, 이날 오후 3시부터 대한간호협회와 함께 ‘필수의료 강화를 위한 간호사 역량 혁신방안’ 토론회를 연다. 정부는 PA 간호사의 수도 늘린다. 복지부에 따르면 상급종합병원 47곳과 종합병원 328곳을 조사한 결과, 활동 중인 PA 간호사는 3월 말 현재 8982명이다. 향후 2715명을 증원해 총 1만1000여명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의사단체들은 여전히 정부가 증원 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는 17일 제8차 성명서를 내고 “의료계의 단일안은 처음부터 변함없이 의대 증원 원점 재검토”라고 주장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이날 브리핑에서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분은 대통령으로, 의대 정원 증원을 멈추고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기구에서 새로 논의할 수 있도록 방침을 바꿔야 한다”고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