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적도원칙






지난해부터 전 세계적으로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흐름이 퇴조하는 가운데 최근 JP모건·씨티·뱅크오브아메리카·웰스파고 등 미국 4대 은행이 ‘적도원칙(赤道原則·Equator Principles)’에서 잇따라 탈퇴했다. 이 원칙은 환경 파괴와 인권 유린 등을 유발하는 대형 개발 사업에 대한 자금 지원 금지를 골자로 한 국제 금융권의 자율 협약이다. 2003년 6월 세계은행(WB) 산하 국제금융공사(IFC)와 10개 금융기관이 미국 워싱턴DC에서 행동 협약을 제정했다. ‘적도’라는 명칭은 대규모 프로젝트가 주로 적도 인근 지역의 개발도상국에서 시행되는 경우가 많아 붙여졌다. 2021년 기준 37개국, 116개 금융기관이 가입했고 우리나라에서도 산업은행과 5대 시중은행이 가입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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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유행처럼 번지던 글로벌 금융기관들의 ESG 경영이 새로운 상황을 맞았다. 최근 JP모건애셋매니지먼트·핌코 등 대형 자산운용사들은 투자자 주도의 기후변화 대응 모임인 ‘기후행동100+’에서 잇따라 탈퇴했다. 지난해 11월에는 HSBC·스탠다드차타드·소시에테제네랄·ABN암로 등 유럽 4개 주요 은행들이 ‘과학기반감축목표이니셔티브(SBTi)’에서 이탈했다. 탈퇴한 금융사들은 아프리카·아시아에서는 아직 화력발전이 필요한데 현행 기준이 너무 엄격하다고 했다. 투자자의 관심도 줄면서 신규 ESG 펀드 출시 건수는 지난해 상반기 55개, 하반기 6개로 급감했다. 2021~2022년에는 연평균 100여 개씩 출시됐었다.

ESG 투자가 부진한 이유는 화석연료 관련 대출을 줄이면 수익률 하락이 불가피해서다. 현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사태 등으로 고유가가 지속되면서 화석연료 기업들의 이익이 급증한 반면 ESG 주식형 펀드의 수익률은 저조한 실정이다. 또 주요국들이 마케팅을 위해 환경친화적으로 위장하는 ‘그린워싱’을 대폭 규제하면서 관련 투자 상품의 출시가 위축되고 있다. 미국 내 공화당을 중심으로 반(反)ESG 바람이 거센 것도 부담이다. 글로벌 유행을 좇기보다는 국익과 에너지 안보의 관점에서 경제성장과 탄소 중립을 함께 고려하는 종합적인 에너지믹스 전략을 짜야 할 때다.


최형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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