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은 타다 사태 이후 정부에 규제를 풀어달라고 건의하는 것은 꿈도 못 꿉니다. 해외 진출이 화두로 떠올랐지만 안방에서도 불안한데 어느 기업이 해외에서 성공을 보장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3D 프린팅 기술로 안경을 제조하는 한 스타트업의 대표는 최근 기자와 만나 한국에서 온라인 안경 판매가 금지돼 있는 현실에 대해 토로했다. 미국·일본·중국에서는 아마존과 같은 전자상거래 플랫폼으로 안경을 주문하는 게 일상적이지만 국내에서는 국가 자격시험을 통과한 안경사가 있는 안경점에서만 구매가 가능하다. 결국 이 회사는 미국에서 온라인 판매를 시작하는 등 해외 사업에 집중하기로 했다. 대한안경사협회 반대를 의식한 정치권이 규제를 완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더 나아가 법률·의료 시장에서 스타트업이 느끼는 기득권의 벽은 마치 철옹성 같다. ‘제2의 타다 사태’라고 불린 법률 서비스 플랫폼 로톡과 변호사 직역단체 간 법적 분쟁은 지난해까지 무려 8년 간 이어졌다. 국내 리걸테크가 성장할 골든타임을 놓친 사이 전 세계 150개국에 진출한 글로벌 법률 정보 업체인 미국 렉시스넥시스는 한국에 법률 인공지능(AI) 솔루션을 출시했고 로톡은 일본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와 갈등을 겪은 성형 정보 플랫폼 강남언니 또한 일본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국내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은 저출생·고령화 추세를 고려하면 선택이 아닌 필수다. 하지만 자국 시장에서 리스크를 짊어지고 해외에 도전장을 내미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사업의 장기적인 성공 가능성을 따졌을 때 하늘과 땅 차이다. 정부가 네거티브 규제를 적용하는 글로벌 혁신특구를 전국 곳곳에 조성하지만 신산업이 기존 산업과 충돌하는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결국 이해관계자 간 갈등에서 벌어질 수 있는 리스크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은 정치권이다. 4·10 총선에서 압승하며 거대 야당 지위를 유지한 더불어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당시 시중은행의 기득권을 허물고 인터넷전문은행을 키우기 위해 은산 분리 규제를 완화했다. 차기 국회에서도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신산업 규제 완화에 협력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