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요원들이 네덜란드와 폴란드 소재 중국 보안 장비 생산·판매 기업들을 새벽에 급습해 조사했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24일 보도했다. EU는 이날 중국이 의료기기를 공공조달할 때 유럽 업체들의 공정한 참여를 허용하는지에 대해서도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다음 달 유럽 순방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EU가 잇따라 중국의 불공정 교역을 문제 삼는 조사에 나서며 중국·유럽 간의 긴장감이 고조되는 모습이다.
SCMP의 보도에 따르면 EU 집행위는 23일(현지시간) 네덜란드와 폴란드 당국자들과 함께 이 나라 소재 중국 보안 기업에 새벽부터 들이닥쳐 정보통신기술(ICT) 시스템에 접속하고 직원 연락처를 검색하는 등 상당한 시간을 들여 조사를 진행했다. EU 집행위는 성명을 통해 “EU 역내에서 보안 장비를 생산·판매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예고 없이 방문 조사를 했다”면서도 조사 대상 기업의 업종과 명칭, 국적 등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았다. 집행위는 이어 “이번 조사는 왜곡된 해외 보조금 의혹에 대한 예비 조사 단계”라며 “다음 단계는 심층 조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U는 최근 중국 기업들을 상대로 보조금 규정을 준수하고 있는지 유럽업체와 불공정 경쟁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사해왔다. 특히 지난해 7월 자국의 과도한 보조금을 받아 제품 단가를 낮추는 등의 불공정을 감시하는 역외보조금규정(FSR)을 전면 시행한 후 태양광 패널과 풍력용 터빈 등의 분야로 조사 대상을 확대하면서 중국 기업을 밀착 감시했다. 이번 조사도 FSR 규정을 준수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조사 이후 불공정 여부가 확인될 경우 EU는 해당 기업에 징벌적 관세 등을 부과할 수 있다.
EU는 중국이 자국 기업에 특혜를 주고 있는지에 대한 조사도 실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날 EU는 중국이 의료기기를 공공조달할 때 유럽 업체들의 공정한 참여를 허용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조사를 착수했다. EU 집행위는 중국 의료기기 업체들을 상대로 2022년 6월 채택한 국제 공공 조달규정(IPI)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IPI는 EU 기업의 공공 조달 시장 접근을 제한하는 제3국의 기업들이 EU 조달시장 입찰을 제한하거나 입찰 조건에 불이익을 주는 상호주의 성격의 조달 규정이다. EU는 조사 후 문제가 있다고 판단할 경우 대응 조치로 EU 조달 시장에 대한 중국 업체들의 접근을 제한할 수 있는 셈이다.
EU의 조사는 최근 중국 기업들의 과잉 생산과 저가 수출 확대로 자국 시장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라는 분석이다. 다만 EU의 조사가 무역 파트너인 중국과의 관계를 해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EU는 중국의 두 번째로 큰 무역 파트너이자 가장 중요한 외국인 투자처 중 하나다. 실제 이날 중국 상공회의소는 “EU의 갑작스러운 불시 조사는 EU 내 외국 기업의 비즈니스 환경을 훼손한다”며 반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