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류분 제도는 특정 상속인이 유산을 독차지하는 것을 방지하고 남은 유족들의 생존권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된 민법상 제도다. 가족 간 분쟁을 막고 긴밀한 유대를 유지하도록 하는 일종의 법적 안전장치인 셈이다. 하지만 유류분 제도가 개인의 재산권을 지나치게 침해한다는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피상속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법이 정한 비율에 따라 재산을 분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곧 피상속인을 장기간 유기하거나 정신적·신체적으로 학대해온 상속인에게도 유산상속이 보장되는 문제로 이어졌다. 과거 천안함 폭침 사건과 세월호 참사, 구하라 사건 등에서 자식의 사망 이후 수십 년 만에 나타나 보상금을 챙기는 부모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거세지며 유류분 제도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도 커져갔다.
헌재가 25일 유류분 위헌 제청 및 헌법소원 사건에 대해 일부 위헌 및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 역시 변화하는 사회에 맞춰 법 개정의 필요성을 인정한 것이다. 유류분 제도는 2010년과 2013년 두 번이나 헌재 심판대에 올랐으나 모두 합헌 판단을 받았다. 결국 1977년 도입 이후 47년간 단 한 번도 개정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날 위헌 및 헌법 불합치로 결정한 조항들에 대해 “불합리하고 부당해 피상속인과 수증자가 받는 재산권의 침해가 공익보다 중대하고 심각하다”고 짚었다.
대표적인 것이 유류분 상실 사유에 대한 규정이다. 헌재는 재판관 전원이 상속인의 유류분 상실 사유를 규정하지 않은 것이 불합리하다고 봤다. 아울러 “패륜적인 행위를 일삼은 상속인의 유류분을 인정하는 것은 일반 국민의 법 감정과 상식에 반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해당 민법 제1112조는 법적 공백을 방지하기 위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법 개정 시한은 2025년 12월 31일까지다.
또 망인이 기여상속인에게 증여한 재산을 유류분 배분의 예외로 인정하지 않는 민법 1118조 일부에 대해서도 헌법 불합치 결정을 냈다. 기여상속인은 상당한 기간 망인을 부양하거나 재산 형성에 기여해 공동상속인으로 인정받는다.
헌재는 “기여상속인이 피상속인으로부터 재산 일부를 증여받더라도 해당 증여재산이 유류분 산정 기초 재산에 산입되므로 기여상속인이 비기여상속인의 유류분 반환 청구에 응해 증여재산을 반환해야 하는 부당하고 불합리한 상황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전원 합치로 피상속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형제·자매에 대한 유류분을 강제하는 법 조항에 위헌 결정을 내린 것 역시 개인의 재산권을 보장하기 위한 결정으로 분석된다. 형제·자매는 상속재산 형성에 대한 기여나 기대 등이 거의 인정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유류분권을 부여하는 타당한 이유가 없다는 게 헌재의 판단이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일본 등의 국가도 형제·자매는 유류분권자에서 제외된다.
다만 헌재는 유류분 제도 입법 목적의 정당성 자체는 인정했다. 재판부는 “(일부 유류분 제도 조항으로) 침해되는 사익이 공익보다 더 크다고 보기 어렵다”며 “유류분 제도는 오늘날에도 유족들의 생존권을 보호하고 가족의 긴밀한 연대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판결의 의의를 밝혔다.
일부 유류분 제도 관련 조항은 합헌 결정을 받았다. 유류분권리자와 유류분이 획일적인 부분에 대해 다수의 재판관이 “다양한 사례에 맞춰서 유류분권리자와 유류분을 적정하게 정하는 입법을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고 구체적 사정을 고려해 개별적으로 정하게 하는 것은 심리 지연과 재판비용의 막대한 증가 등을 초래할 수 있다”며 합헌으로 봤다.
한편 헌재가 유류분 상실 사유가 규정되지 않은 조항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이른바 ‘구하라법(부양의무를 게을리한 부모를 상속결격자로 정하는 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을지도 귀추가 주목된다. 국회는 2021년 해당 법안을 상정했고 법무부 역시 2022년 6월 구하라법과 비슷한 내용의 상속권 상실 제도 신설을 골자로 하는 민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두 법안은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조웅규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유류분권은 일종의 ‘법적 특혜’로 비상속인의 재산 처분의 자유와 증여 및 유증받은 자의 재산권을 제한하면서까지 부여하는 권리기 때문에 결격사유가 있는 상속인의 권리를 상실해야 한다는 헌재의 판단이 바람직하다”면서 “유류분 제도에 이어 상속 제도로 개정 범위를 넓힐 경우 구하라법 개정안 통과에도 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