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醫政) 갈등이 전공의 집단 사직 11주차가 되도록 해결 기미가 없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1일 초강경 차기 대한의사협회 집행부 출범까지 겹치며 ‘첩첩산중’이다. 차기 의협 회장은 28일 증원 백지화 없이는 어떠한 협상도 없다는 입장을 다시금 강조했고, 의대교수들은 이번 주부터 주 1회 휴진에 들어가는 등 강경대응이 줄을 잇고 있다. 이 같은 출구 없는 ‘강대강’ 대치가 석 달 가까이 이어지면서 환자 불편 등 피해만 키우고 있다.
임현택 차기 회장 “의대 정원 증원 등 죽을 각오로 막을 것”
의협은 28일 서울 더케이호텔에서 열린 정기대의원총회에서 2월부터 시작해 온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마무리하고 임현택 차기 회장 당선인 중심으로 대정부 투쟁을 이어가기로 했다. 이에 따라 임 당선인은 이날부터 실질적으로 활동을 개시하게 된다.
그는 이 자리에서 당선인 인사를 통해 그간의 강경 발언을 이어갔다. 임 당선인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의 ‘백지화’ 다음에야 의료계는 원점에서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며 “그렇지 않고서는 단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을 것이며, 그 어떠한 협상에도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 당선인은 그러면서 “정부는 사태 심각성을 깨닫는다면 하루빨리 국민과 의료계에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현재 의정 갈등에 대해서도 “갈등 문제가 아닌 정부의 일방적 권력 남용이 촉발한 ‘의료 농단’”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잘못된 정책에 대해서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올바른 목소리를 낼 것이며, 의료를 사지로 몰아가는 정책에 대해서는 죽을 각오로 막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의대 정원 축소’ 주장 강경파… 의정갈등 최전선
임 당선인은 의료계와 정부 간 갈등의 최전선에 선 대표적 강경파 인사로, 향후 의정 갈등의 가장 큰 뇌관으로 꼽힌다. 특히 지난 2월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열린 민생토론회에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 대해 항의하다 경호처 직원들에게 입을 틀어막힌 채 끌려 나가며 유명해졌다.
정부가 2025학년도에 한해 대학별로 의대 증원분의 50~100% 내에서 자율 조정을 허용하며 ‘2000명 증원’에서 한 발 물러서며 대화 제스처를 보냈지만, 의료계는 여전히 반대한다. 의료계 안팎에서는 이러한 강경론의 선봉인 임 당선인이 의협 회장에 공식 취임한 후 의협의 대정부 투쟁 수위가 높아질 것으로 본다. 경찰이 지난 26일 임 당선인에 대해 진행한 추가 압수수색도 강경대응을 자극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그는 지난달 의협 회장 선거 당시 저출생으로 인해 의대 정원을 500~1000명 줄이는 게 바람직하다는 주장을 편 바 있다. 당선 후에는 “면허정지나 민형사상 소송 등 전공의·의대생, 병원을 나올 준비를 하는 교수들 중 한 명이라도 다치는 시점에 총파업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부가 최근 의대교수들의 휴진 등 결의에 대해 관계법령 위반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밝힌 것과 관련해서는 “교수들을 범죄자 취급하고 있다. 동네 양아치 건달이나 할 저질 협박”이라고 비난했다.
정부는 개혁 굳건 “유감, 집단행동 자제를”… 환자 피해 커질 듯
그간 의협을 이끌었던 비대위 집행부, 새롭게 선출된 대의원회 의장도 차기 집행부와 협력을 공언했다. 의협이 임 당선인을 중심으로 대정부 투쟁을 강하게 전개하고, 의정 갈등 해결의 실마리도 쉽게 풀리지 않으리라는 전망이 가능한 대목이다. 김교웅 신임 의협 대의원회 의장은 “집행부가 잘하도록 대의원회에서 적극 후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택우 비대위원장도 “전공의와 교수들이 의협을 중심으로 힘을 합치는 게 가장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의정 간 갈등 상황을 더 악화시킬 문제들만 기다리고 있다. 서울 시내 ‘빅5’ 병원을 비롯한 전국 의대 교수들은 2025학년도 의대 모집정원 확정을 앞두고 이번 주 하루씩 외래진료·수술을 중단하며, 상당수는 환자가 정리되는 대로 사직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이날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회의에서 유감과 우려를 표하며 집단행동 자제를 당부하는 등 의료개혁 기조 유지 입장을 고수했다. 논의의 돌파구로 기대되던 의료개혁특위마저 중장기 정책 자문기구로서 의대 정원 문제는 논의 대상이 아니라고 선을 그은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