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실적 악화로 세액공제 등의 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금액이 급증해 내년 이후 법인세 세수에도 빨간불이 들어왔다.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이 올해 법인세를 한 푼도 내지 않을 예정인 가운데 당분간 법인세수 불확실성이 높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28일 금융 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매출액 1000억 원(별도·개별 기준) 이상의 코스피 상장사 624곳의 이연법인세 자산과 이연법인세 부채의 차액이 10조 1000억 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22년(-6조 4000억 원)보다 16조 5000억 원 늘어난 것이다.
이연법인세 자산은 세액공제 등을 통해 향후 줄일 수 있는 법인세를 보여준다. 반면 이연법인세 부채는 앞으로 부담해야 할 대략적인 법인세 비용을 뜻한다. 이연법인세 자산이 부채보다 많다는 것은 향후 기업들이 정부에서 받을 세제 혜택이 상대적으로 더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지난해 실적 악화로 기업들이 공제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줄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코스피 상장 결산 기업 705곳의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45% 감소한 39조 6000억 원이었다. 이익을 내야 공제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데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공제 가능 금액이 쌓여 있어 내년 이후 업체들이 이익을 내더라도 법인세 납부액이 크게 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지난해 코스피 상장사 624곳의 이연법인세 자산 총계는 47조 1000억 원으로 전년보다 15조 4000억 원(48.6%)이나 급증했다.
삼성전자는 미사용 세액공제 6조…한전은 이월결손금 13조
정부 안팎에서는 국내 기업들의 이연법인세 자산이 급증하면서 내년 이후에도 법인세 불확실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기업 실적 악화가 당장 올해 법인세 세수에만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니라 미사용 세액공제가 늘어나 법인세 실효세율이 떨어지는 식으로 향후 법인 세수에 지속적으로 여파를 미칠 것이라는 뜻이다. 전직 금융 당국 고위 관계자는 “전체적으로 이연법인세 자산이 증가했다는 것은 향후 법인세 세수 감소 요인이 충분하다는 의미”라고 전했다.
일례로 삼성전자는 지난 3월 2023년 사업보고서를 내면서 지난해 약 7조 9000억 원(별도 기준)의 법인세 수익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정부도 아닌 삼성전자가 법인세 ‘수익’을 공시한 것은 지난해 11조 5263억 원의 적자로 받지 못한 세액공제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삼성전자의 미사용 세액공제는 지난해 4조 7000억 원이나 늘어나며 6조 3000억 원까지 쌓여 있다. 세액공제 미사용분은 삼성전자의 이연법인세 자산이 1년 전보다 7조 8000억 원 증가한 9조 9000억 원을 기록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한국전력과 SK하이닉스도 적자 여파로 인해 이연법인세 자산이 증가했다. 한전의 이연법인세 자산은 전년보다 22% 늘어난 10조 8000억 원을 기록했다. 전기요금 인상 억제로 40조 원의 적자가 누적되면서 이월결손금(전년도 넘어온 손금)이 13조 원이나 쌓였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4조 7000억 원의 영업손실을 보면서 세액공제 미사용분과 이월결손금이 1조 9000억 원 가까이 증가했다.
이연법인세자산은 내년도 이후 세수 추계에도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현재 기획재정부는 이연법인세를 세수 추계에 공식적으로 활용하지 않고 있다. 연도별 예산안에 맞춰 예상 세입을 짜야 하는 기재부 입장에서는 회계적 가정에 기초를 둔 이연법인세를 세수 추계에 반영하기는 까다로운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이연법인세 자산 증가 폭이 커졌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세제 정책을 짤 때 최소한 참고는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의 회계 정책에 따라 세법상 법인세와 회계상 법인세 사이에는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내년 이후 세수를 볼 때 이연법인세를 활용하는 것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한 회계학 전공 교수는 “정부에서도 세수 추계 때 이연법인세 변동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산업과 한전의 재무 상태가 세수에 미치는 영향이 더 커졌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실제 삼성전자·SK하이닉스·한전의 이연법인세 자산은 총 23조 원으로 코스피 상장사 전체의 50%에 육박한다. 한 정부 관계자는 “반도체 업계의 경우 경기와 설비 투자 증가분 등에 따라 이익 변화가 너무 크다”며 “반도체 산업이 세수에 끼치는 영향이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