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중대한민국대사관이 베이징 특파원들에게 대사관 출입과 취재를 제한하는 ‘사전 허가제’를 일방 통보한 것에 대해 특파원들이 ‘정재호 주중대사의 대언론 갑질’이라며 항의 성명을 냈다.
주중대사관은 29일 “특파원 대상 브리핑 참석 이외의 취재를 위해 대사관 출입이 필요할 경우 사전(최소 24시간 이전)에 출입 일시, 인원, 취재 목적을 포함한 필요 사항을 대사관에 신청해 주기 바란다”며 “대사관은 신청 사항을 검토 후 대사관 출입 가능 여부 및 관련 사항을 안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주중대사관 출입 방식이 기존과 달리 ‘최소 24시간 전 허가제’로 변경됐으며 이 과정에 특파원과의 협의는 없었다. 주중대사관은 새로운 출입 방식을 5월 1일부터 시행한다고 이틀 전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출입 방식을 변경한다고 밝힌 표면적인 이유는 보안 문제였다. 최근 한 언론사가 사전 협의 없이 중국인 직원과 함께 대사관 내부에 들어와 촬영한 것을 문제로 삼았다. 주중대사관의 지적과 달리 해당 언론사의 중국인 직원은 정식 채용된 인력으로 기존에도 특파원과 동일한 과정을 거쳐 대사관을 출입해왔다.
대사관은 다른 국외 공관도 동일한 절차가 있다고 밝혔지만 미국이나 프랑스, 일본 등의 한국 대사관에는 24시간 전에 취재 신청을 하고 이를 허가받는 과정은 없다.
이날 베이징 특파원들은 대사관의 일방적인 조치를 즉각 철회, 브리핑 정상화, 정 대사의 사과 등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의결하고 30일 발표했다. ‘정재호 대사, 대언론 갑질 멈춰라’는 제목의 성명은 “대부분의 보도가 실시간으로 이뤄지는 최근의 언론환경을 고려했을 때, ‘24시간 이전 신청’은 취재 원천 봉쇄 조치”라고 지적했다. 이어 “특히 이번 통보는 지난달 말 한국 언론사들이 정재호 대사의 갑질 의혹을 보도한 이후 나왔다”며 “이는 ‘불통’을 넘어 언론 자유를 침해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심각하게 저해하는 행위와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성명은 "베이징 특파원 일동은 주중한국대사관의 출입 제한 통보 즉각 철회와 기형적인 브리핑 정상화, 그리고 정 대사의 사과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브리핑 정상화는 특정 언론사가 비실명 보도 방침을 어겼다고 주장하며 정 대사가 부임 후 1년 7개월째 한국 특파원 대상 월례 브리핑 현장에서 질문을 받지 않는 비정상적인 행태를 중단하고 현장 질의응답을 받으라는 요구다. 국익을 위해 필요하거나 외교 마찰 등을 고려하는 통상적인 비실명보도 방침과 달리 정 대사 개인의 태도 등을 문제 삼은 보도였음에도 향후 재발 가능성을 우려해 이후 브리핑에선 질문이 불가능해졌다. 현재 대사관 측은 이메일을 통해 사전에 접수한 질문에 대해서만 정 대사 본인이 직접 읽고 직접 답하는 유례없는 형태의 브리핑을 이어오고 있다.
정 대사는 이달 초 대사관 직원을 상대로 폭언 등 갑질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외교부로부터 조사를 받고 있다. 정 대사는 이에 대해 “일방의 주장만을 기초로 한 것”이라고 부인하고 있다.
이번 성명문에는 주중 한국 언론 31개사 36명 베이징 특파원 중 반대한 1명을 제외한 35명이 연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