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강세가 장기화하면서 아시아태평양 개발도상국들의 부채 리스크가 확산하고 있다. 달러 대비 자국 통화가치가 하락해 상환 부담이 불어난 탓이다. 채무 관계를 이용해 중국이 개도국의 인프라 운영권을 가져가는 등 패권 확대의 조짐도 보여 주변국들의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8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아시아개발은행(ADB)은 국가채무비율이 높은 아시아·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인프라 정비 등에 드는 자금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ADB는 지난달 25일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개최한 연례총회에서 개도국들의 채무 문제를 중요한 의제로 다뤘다. 총회에 참석한 스즈키 슌이치 일본 재무상은 “저소득국뿐만이 아니라 중소득국 일부에서도 국가 재정의 취약성이 심각하다”고 짚었다. 일본은 ADB가 확대 중인 개도국 지원 기금의 최대 공헌국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아시아의 신흥·중소득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채무 잔액 비중은 올해 82.4%로 전년보다 3%포인트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36.2%), 라틴아메리카(68.5%)를 웃도는 수치다.
일본을 비롯해 ADB가 개도국들의 채무 지원을 확대하는 배경에는 중국이 있다. 중국에 진 채무를 갚지 못해 인프라 통제권 등을 빼앗기는 이른바 ‘채무의 함정’에 개도국들이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7년 스리랑카는 중국에 진 빚을 갚지 못해 남부 함반토타 항구 운영권을 중국에 넘겼다. 라오스의 GDP 대비 정부 부채 잔액 비율도 지난해 120%를 넘었으며 대외 채무 중 절반이 중국에 진 빚이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의 한 관계자는 “한때 중국에 동남아시아의 현관문이었던 라오스는 이제 아태 지역에 중국의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중국의 지배 하에 있는 곳이 됐다”고 말했다.
IMF는 2월 69개의 저소득 국가 중 라오스 등 9개국을 ‘대외 채무 변제가 어려운 국가'로, 몰디브·파푸아뉴기니·키리바시·마셜제도 등 25개국을 ‘고위험 국가’로 분류했다.
재정 불안으로 자국 통화가치가 하락하면 달러 강세와 맞물려 달러 표시 채무 잔액이 증가하게 된다. 또 연료와 식품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곳이 많아 인플레이션 가속도 우려된다. 닛케이는 “중국의 군사 거점화 등을 피하고 지역 경제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제휴를 통해 채무 투명성을 확보하면서 질 높은 인프라 정비 등의 대처가 필요하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