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소형 상장사들이 5년 안에 갚아야 할 빚이 6200억 달러(약 850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고금리 기조가 길어지면서 이들 중소형 기업의 부채와 이자가 큰 폭으로 뛰면서다. 올 들어 빅테크를 앞세운 대형주들이 증시 자금을 빨아들이며 상승 랠리를 펼치는 동안 중소형주들은 20년 만에 최저 수준의 주가를 기록하는 등 증시에서도 소외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금리 인하가 지연되고 경기 불확실성이 커짐에 따라 자금난에 허덕이는 중소형주들이 향후 더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11일(현지 시간) 자체 조사 결과 뉴욕증시에서 러셀2000지수를 구성하는 기업들의 총부채 규모가 8320억 달러(약 1142조 원)에 이르며 이 중 75%에 해당하는 6200억 달러가 2029년까지 갚아야 할 빚이라고 보도했다. 러셀2000은 미국 중소형주를 대표하는 지수로 시가총액 1001~3000위 상장사들을 포함한다. 이들 기업의 시가총액 총합이 3조 300억 달러인 점을 고려할 때 부채 비중이 27.5%에 달하는 셈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2022년부터 기준금리를 총 11회 인상하는 동안 중소형 기업들의 이자비용은 더 큰 폭으로 오른 영향으로 분석된다. 채권을 발행할 만큼 규모가 크지 않은 기업들은 대부분 상당한 변동금리를 따르는 대출을 통해 자금을 조달한다. 마리자 베이트마네 스테이트스트리트 수석멀티자산전략가는 “소형주는 경기 둔화에 훨씬 민감하고 자금 조달 비용은 더욱 높아지며 마진 압박을 더 심하게 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선호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소형주들은 이 같은 빚 부담 속에서 지난해 말부터 계속된 미국 증시 최장 랠리에서도 배제됐다. 시장에서 예상하는 연준의 연내 금리 인하 횟수가 연초 6회에서 이달 2회로 줄어드는 동안 S&P500지수는 9.5% 상승한 반면 러셀2000지수는 1.6% 오르는 데 그쳤다. 블룸버그는 “대형주 지수가 올해 들어 22번 자체 기록을 경신한 반면 중소형주 지수는 2년 반 동안이나 최고점에 도달하지 못했다”며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장 기간”이라고 설명했다.
여기다 스태그플레이션(물가 상승 속 경기 둔화) 우려 등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중소형주들의 저평가는 심화하고 있다. S&P500지수와 비교한 러셀2000지수의 주가매출비율(PSR)은 코로나19 팬데믹 당시를 제외하면 2003년 이후 약 20년 만의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네드데이비스리서치에 따르면 헤지펀드들은 최근 3주간 러셀2000 선물 시장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쇼트(매도) 포지션을 형성했다.
‘실탄’은 바닥나고 부채는 쌓이는 등 자금난에 빠진 중소형 기업들의 실적 전망은 더욱 암울하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에 따르면 금리가 현재 수준에서 유지될 경우 중소형주들의 영업이익(금융 부문 제외)은 향후 5년간 32%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다.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는 업체의 비중은 1990년 20% 미만에서 올해 42%로 2배 넘게 늘어났다. 휴 그리브스 프리미어미튼US오퍼튜니티 펀드매니저는 “러셀지수에 있는 기업들의 질은 20년 전보다 훨씬 나빠졌다”며 “수익을 창출한 적이 없거나 앞으로도 창출하지 못하지만 상장하는 기업들이 많아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부채 경고음은 미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연준은 10일 반기 보고서를 통해 일부 상업용 부동산 대출의 연체율이 코로나19 이전 수준 이상으로 오르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다만 연준은 “(상업용 부동산 부실에 대한) 감독의 속도와 강도·민첩성을 적절히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미국 금융 시스템은 위험에 대처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