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LB(028300)가 개발한 간암 신약이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획득하지 못하면서 HLB의 주가가 하한가를 기록했다. HLB뿐 아니라 HLB그룹의 7개 계열사도 개장 즉시 하한가로 직행했다. HLB그룹의 시총은 5조 원 가까이 증발했다.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에 대해 단순히 FDA 허가 문제뿐 아니라 투자자들의 기대를 지나치게 키웠다는 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번 악재가 신약 개발에 도전하는 다른 바이오 기업에 대한 기대감에도 찬물을 끼얹을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1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HLB의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2만 8700원(29.96%) 감소한 6만 7100원에 장을 마감했다. HLB뿐만 아니라 HLB글로벌(003580)·HLB바이오스텝(278650)·HLB생명과학·HLB이노베이션(024850)·HLB제약(047920)·HLB테라퓨틱스(115450)·HLB파나진(046210) 모두 가격 제한폭까지 하락했다. 이날 HLB그룹의 계열사들이 일제히 폭락하면서 시가총액 기준으로 약 5조 원이 증발했다. 코스닥 상장사 전체 시가총액이 412조 원 수준인 것을 감안할 때 코스닥 기준 1%가 넘는 시가총액이 하루 만에 사라진 것이다.
HLB는 이날 리보세라닙과 캄렐리주맙 병용 요법에 대해 FDA의 승인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HLB는 자체 개발한 ‘리보세라닙’과 중국 항서제약의 ‘캄렐리주맙’ 병용 요법으로 간암 1차 치료제 품목허가를 신청한 바 있다. FDA는 16일(현지 시간)까지 심사를 완료하기로 했는데 HLB와 항서제약에 보완요구서한(CRL)을 보냈다. FDA의 CRL은 사실상 품목허가 거절과 같다. 신약 개발사가 CRL을 수령하면 허가 절차를 다시 밟는 방법밖에는 없다.
이날 증시에서 면역항암제(+0.50%), 제약(0.00%), 백신(+0.07%), 유전자치료제(-0.56%), 비만치료제(-0.91%) 등 제약·바이오 종목은 보합세에 머물렀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코스닥이 전반적으로 약세를 보이는 가운데 제약·바이오 개별 종목은 실적과 신약 허가에 따라 희비가 엇갈렸다”고 짚었다.
다만 바이오 기업 중 코스닥 시가총액 1위 기업인 HLB가 추락하면서 향후 투자자들이 바이오 기업을 회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HLB의 경우 올 1분기 매출 111억 원에 영업손실은 357억 원이나 됐다. 실적 같은 계량적 지표가 아닌 꿈을 먹고 자라는 바이오라지만 HLB의 미국 진출 좌초는 다른 신약 개발 바이오텍에 대한 투자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다.
허황된 정보로 주가를 부양하려는 행태도 도마에 올랐다. HLB의 주가는 올 1월 간암 신약이 사실상 FDA의 허가를 획득했다는 소식에 당시 장중 24%까지 치솟았다. 당시 HLB 측은 내부적으로 허가를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증권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일부 바이오 기업들이 FDA 허가나 기술이전 등에 대해 강한 확신을 내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허가 절차나 계약 과정상에서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는 만큼 섣부른 의사소통은 시장 신뢰를 저하시킬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국내 바이오 기업들은 HLB의 신약 허가 과정에 대해 사례 분석에 나서면서 촉각을 세우고 있다. HLB발 악재가 시장 전반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만큼 이를 대비하는 차원이다. 바이오 업계의 한 관계자는 “HLB 사안은 FDA 허가를 동일하게 준비 중인 국내 신약 개발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당장에 상당수의 기업들이 이번 사례 분석을 시작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어 “업계에서는 HLB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