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칩이 계속 소형화하면서 물리학의 한계에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반도체 제조 분야에서 가장 발전된 역량을 갖고 있는 한국은 인공지능(AI) 분야에서 연구개발(R&D) 투자를 확대해 디지털 트윈(현실 기계·장비를 가상으로 구현)을 구축하고 반도체 설계를 최적화하는 데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니마 아난드쿠마르 캘리포니아공대(칼텍) 석좌교수가 기술 패권 경쟁 시대를 맞아 첨단산업 경쟁력 확보에 나선 한국 정부와 산업계에 건넨 조언이다. 서울경제신문이 28일과 29일 양일간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개최하는 ‘서울포럼 2024’의 기조강연자로 나서는 아난드쿠마르 석좌교수는 “AI R&D에 대한 추가 투자를 통해 발전을 가속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난드쿠마르 석좌교수는 미국의 대표적인 AI 반도체 칩 기업인 엔비디아에서 AI 연구 총책임을 지냈다. 그는 35세였던 2017년 칼텍에 최연소 석좌교수(Bren professor)에 임명됐고 현재 AI 머신러닝과 차세대 AI 알고리즘 연구를 하고 있다.
아난드쿠마르 석좌교수는 한국이 집중해야 할 첨단산업으로 반도체를 지목하면서 AI와의 결합이 제품 경쟁력을 극대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AI는 리소그래피(웨이퍼에 패턴을 형성하는 식각 공정)와 같은 고차원 물리학 공정을 통합하고 시뮬레이션할 뿐 아니라 설계 최적화, 칩 배치, 레이아웃 최적화 등 많은 공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엔비디아에서 AI 연구를 이끌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첨단 기술 산업에서의 AI의 무한한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는 “엔비디아에 합류했던 2018년은 딥러닝이 이제 막 상업화 단계로 넘어가는 시기였다”며 “엔비디아에서 언어 모델을 통해 제어 가능한 생성을 이루는 초기 작업을 수행하는 등 ‘생성형 AI 혁명’의 촉발에 기여했다”고 말했다. 이어 “엔비디아 연구자들과의 협력을 통해 AI 연구의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아난드쿠마르 석좌교수는 한국이 AI 분야에서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인재 육성’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정부가 나서 AI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생애 교육 전 과정에서 투자해야 한다”며 “AI를 교육에 통합하면 다양한 학습 스타일과 속도에 맞춰 개인화할 수 있어 훨씬 더 나은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전했다. AI 역량 강화를 위해 투자를 더욱 늘려야 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는 “AI 연구는 대규모 컴퓨팅 시설이 필요한데 우리가 진행하는 언어 모델 개발에는 수천 개의 그래픽처리장치(GPU)가 사용된다”며 “원자 규모부터 행성 규모의 시뮬레이션 등 과학을 위한 AI 역량을 위해서는 정부가 주도해 국가 차원의 슈퍼컴퓨팅 시설을 구축하는 등 전략적 투자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난드쿠마르 석좌교수는 지난해 11월 엔비디아를 떠나 칼텍으로 복귀한 뒤 기상 예측 모델 개발 등 AI를 활용한 시뮬레이션 등 폭넓은 연구를 진행 중이다. 그는 “AI가 물리적 세계의 시뮬레이션 환경을 생성하고 현실에서 실험을 줄이도록 돕는 작업을 하고 있다”며 “예를 들어 AI가 튜브의 유체역학을 학습해 개선된 의료용 카테터(치료용 관)를 개발하거나, AI 기반으로 기상을 예측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아난드쿠마르 석좌교수가 개발한 AI 기반 일기예보 모델 ‘포캐스트넷’은 기존 AI를 통해 1년이 소요되던 작업을 1시간으로 단축시켰다. 그는 “포캐스트넷은 정확도 면에서 전통적 모델 대비 수천 배 더 빠르고 일반적인 기상 조건 동안의 예측뿐 아니라 허리케인·폭염 등 극한 기상예보에서도 우수한 성능을 발휘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