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원전 증설 붐이 일어나면서 은퇴했던 원전 전문가들이 ‘귀한 몸’이 됐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자력산업 전반에 대한 투자 감소와 함께 기술자도 크게 줄어든 상황에서 수십 년 경력의 ‘전직 원전 전문가’에 대한 수요도 늘고 있는 것이다.
18일(현지 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프랑스·미국·영국·폴란드 등에서 활약하는 글로벌 원자로 건설 업체들은 최근 수십 년 만에 최대 규모로 늘어난 신규 프로젝트에 대비해 대규모로 직원을 채용하고 있다. 젊은 엔지니어뿐 아니라 이미 은퇴한 고령의 기술자들을 컨설턴트 등으로 재고용하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
대표적인 곳이 프랑스이다. 프랑스는 원자로 56기를 보유한 유럽 최대의 원전 사업국으로 올여름 노르망디 플라망빌에 25년 만에 처음으로 새로운 원자로 가동을 예정하고 있다. 또 2030년대 후반까지 최소 6기의 신규 원자로 건설을 계획 중이다. FT는 이처럼 프랑스 원전 사업이 다시 활성화되고 있는 가운데 수백 명의 전직 원자력 전문가가 재고용됐다고 전했다. FT에 소개된 장마르크 미로쿠르(69) 씨는 프랑스 국영 전력공사(EDF) 출신 기술자로 2019년 은퇴했지만 현재 EDF의 입찰 및 기타 프로젝트에서 자문을 맡고 있다. 그는 “나는 내 일을 사랑했으며 지금은 구체적인 프로젝트와 인력 수요가 많다”며 “수요가 있는데 경험을 공유하지 않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프랑스의 퇴직자 전문 에이전시 ‘엑스퍼커넥트’ 역시 원자력 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1600명의 퇴직 기술자가 등록됐다고 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핵 겨울 당시에는 투자가 없었고 고용도 동결됐지만 이제 우리는 퇴직자들의 기술이 금처럼 가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프랑스 원자력산업조합(Gifen)은 2033년까지 프랑스에서 6만 명의 원자력 핵심 인력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전망했다.
미국도 사정은 비슷하다. 원전 과학자·기술자 등을 대표하는 미국원자력협회(ANS)의 크레이그 피어시 최고경영자는 협회 평균연령이 51세라며 “사람들이 원자력 업계에서 더 오래 머무르게 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세계 최대 규모의 원자로 94기를 보유한 국가이며 최근 들어서는 소형모듈원전(SMR) 생산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는 원자력산업에 2030년까지 5만 5000여 명, 2050년까지 37만 5000명이 추가로 필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스타트업계에서도 고령 기술자들의 활약은 두드러진다. 런던 기반의 3년 차 SMR 스타트업 뉴클레오는 최고과학책임자(CSO)가 만 75세이며 60대 기술자가 다수 일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젊은 엔지니어들과 함께 일하며 업계의 부족한 인력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미시간대 원자력공학책임자인 토드 앨런은 최근 원자력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다시 늘고 있다며 “퇴직자들이 주요 채용 인력 풀을 형성하지는 않겠지만 멘토링 역할에서 특히 유용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