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여 년 만에 전력 시장 재편에 나선 것은 전력 소비처와 발전소 입지 간 불일치가 심각해 각종 문제를 양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신재생에너지가 폭증하면서 현행 전력도매가격(SMP) 산정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도 개편의 이유로 작용했다.
22일 공개한 산업통상자원부의 전력 시장 제도 개선 방향의 골자는 △지역별 차등 요금제 △실시간·예비력 시장 개설 △준중앙급전 분류 신설 △모든 발전원에 대한 가격 입찰 추진 등이다. 특히 전력 소비자들이 가장 체감하는 변화는 지역별 차등 요금제 도입이다. 현재는 용도별·사용량에 따른 전기요금에 차이가 있을 뿐 전국이 하나의 요금 테이블을 공유하는 시스템이다. 이러한 전국 단일 요금 체계는 전국 단위의 경쟁, 필수 발전기 운영 등의 이점이 존재하지만 전력 소비가 수도권(전력 자급률 67%)에 집중되는 데 반해 전력 공급 설비는 지대가 낮은 비수도권에 몰리는 수급 불일치 문제가 발생한다.
한국전력의 시도별 전력 자급률 자료에 따르면 부산(216.7%), 충남(214.5%), 인천(212.8%), 경북(201.4%), 강원(195.5%), 전남(171.3%), 경남(136.7%), 울산(102.2%)은 소비량만큼 지역에서 전력 생산이 가능하다. 반면 대전(2.9%) 광주(2.9%), 서울(8.9%) 등은 소비량은 높은데 발전 설비는 적어 다른 지역에서 생산한 전력을 끌어와야 하는 실정이다.
변경된 요금 체계에서는 원자력발전 소재지 주민들의 전기요금 인하 기여도도 반영할 수 있다. 3월 발전원별 전력 구입 단가는 원전이 ㎾h당 52.5원으로 가장 저렴했다. 이어 유연탄 130.7원, 신재생에너지 140.5원, 수력 158.5원, 액화천연가스(LNG) 복합발전 178.5원, 양수발전 209.2원 유류발전이 340.7원 순이다. 원전 소재지 주민들이 발전 설비 운영에 따른 리스크를 떠안음으로써 전국의 전기요금 인하에 기여하는 바가 여타 발전원 생산 지역 주민보다 크다는 얘기다. 지역별 원전 발전 설비 용량은 경북 울진이 8700㎿, 전남 영광이 5900㎿, 부산이 4550㎿, 경북 경주가 4100㎿, 울산이 2800㎿ 순이다.
무탄소에너지를 전력 시장에서 효과적으로 수용하기 위한 제도 개선에도 나선다. 정부는 이를 위해 에너지원의 실시간 수급 변동성을 정확하게 반영할 수 있는 전력 시장을 추가 개설하고 가격입찰제를 순차 도입할 계획이다.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는 날씨 등에 따른 높은 변동성에 봄철 일부 시간대에 SMP가 ‘0’으로 책정되는 현상이 나타난 데 따른 것이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8월 제주 지역을 시작으로 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자도 일반 발전 사업자처럼 전력 시장 입찰에 참여해 경쟁하도록 하는 ‘전력 시장 운영 규칙 개정안’을 공고한 바 있다. 재생에너지 전기 비율이 20%에 육박해 수급 안정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제주를 시험대로 삼아 실시간 전력 시장, 가격입찰제를 먼저 시행한 뒤 전국으로 적용 범위를 넓힐 방침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향후 모든 발전원을 대상으로 가격입찰제 전환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재생에너지 해외 진출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예정이다. 해외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민관 합동 재생에너지 해외 진출 협의회’를 구성하고 프로젝트별로 ‘팀 코리아’ 컨소시엄을 구성하기로 했다. 재생에너지 해외 진출에 특화된 ‘종합 지원 정보 플랫폼’을 구축해 KOTRA·한국해외인프라도시개발지원공사(KIND) 등 다수 기관에 분산된 정보를 공유할 방침이다. 이와 더불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이산화탄소 감축 수단으로서 탄소포집·저장(CCS) 기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핵심 기술과 인력 확보, 국내외 저장소 확보를 통한 초기 창출 등에 매진할 계획이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우리나라 에너지 시스템을 무탄소에너지로 전환하기 위해 원전·재생에너지·수소 등 다양한 무탄소에너지원의 공급 역량 확대를 중점 추진해나갈 계획”이라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