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닛과 볼파라는 인공지능(AI)을 접목시킨 소프트웨어로 암 정복을 위한 시너지를 발휘할 것입니다. 볼파라의 (방대한) 빅데이터를 활용해 자율형 AI 진단 판독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입니다.”
서범석 루닛 대표는 22일 서울 강남구 루닛 본사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8개월에 걸친 ‘볼파라헬스테크놀로지(이하 볼파라)’ 인수합병(M&A) 절차가 마무리됐다며 이같이 말했다. 루닛은 21일 볼파라 지분 100%를 취득하고 자회사 편입을 최종 완료했다. 2013년 회사 설립 이후 첫 M&A다. 볼파라는 뉴질랜드에 본사를 두고 미국에서 영업하는 유방암 검진 플랫폼 기업이다. 바이오 헬스 최대 시장인 미국 전체 유방 촬영 검진 기관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2000곳에 유방암 검진 AI 소프트웨어를 공급하고 있다.
서 대표는 루닛과 볼파라를 ‘보완적 관계’라고 표현했다. 루닛의 앞서가는 AI 기술과 볼파라의 방대한 빅데이터를 합쳐 의료 AI 시장에서 우위를 점한다는 계획이다. AI 진단에서 핵심은 정확도다. 정확도를 높이기 위한 필수 조건은 방대한 양의 빅데이터다. 업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갖춘 루닛에 아쉬운 것은 빅데이터였다.
루닛은 볼파라 인수를 통해 AI 진단의 정확도를 높이고 모든 환경에서 일관된 성능을 제공하는 ‘기초 모델’을 구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초 모델 구현을 위해서는 1000만, 1억 규모의 데이터가 필요하다. 서 대표는 “기존에는 세브란스 등 대형 병원과 개별 계약을 맺고 데이터를 구매해 사용했다”며 “1000만 단위 규모의 데이터를 구하려면 고객 풀을 많이 갖고 있는 회사와의 전략적 파트너십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현재 루닛 AI 의료 기기의 진단율은 97~98%다. 루닛 관계자는 “진단율 1~2%포인트 차이는 매우 크다”며 “볼파라와의 협업으로 빅데이터를 구축하면 완벽에 가까운 진단율인 99% 이상을 달성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루닛은 데이터 수집 방식의 변화를 꾀하며 볼파라를 선택했다. 간담회에 배석한 테리 토머스 볼파라 대표는 “볼파라는 매년 2000만 건의 (유방 촬영)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고 이미 1억 1700만 장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서 대표는 “루닛이 5년간 모은 데이터가 30만 장”이라며 “(이번 M&A로) 70배가 넘는 데이터를 매년 모을 수 있게 된다”고 강조했다.
루닛의 궁극적 목표는 환자의 상태를 스스로 진단하고 판독하는 ‘자율형 AI’ 시스템 구축이다. 현재 시스템은 환자 진단의 보조적 위치에만 머물러 최종 판독은 의사가 하고 있다. 자율형 AI 시스템은 의사의 진료 행위 개입 없이 스스로 결과를 판독할 수 있는 수준까지 진화된 단계다. 서 대표는 “병원 입장에서는 같은 수가를 받으면서 전문의가 필요 없으니 비용이 절감될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 정보 관련 법적 장벽이 낮은 미국 시장의 특성도 반영됐다. 루닛 관계자는 “현재도 기술적으로 AI 의료 기기가 분석·진단·판독을 할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법적 문제로 AI 의료 기기가 판독문을 쓰지 못한다”며 “루닛의 기술력과 볼파라의 데이터를 결합하면 분석률 99% 이상에 판독문까지 쓸 수 있는 자율형 AI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루닛은 볼파라 인수 마무리로 미국 시장 내 안정적인 유통망도 확보하게 됐다. 볼파라 매출의 97%가 미국에서 발생한다. 서 대표는 “볼파라는 미국에 직접 판매 채널을 보유하고 있다”며 “볼파라의 브랜드가 강력하게 구축된 만큼 볼파라 이름으로 루닛 제품의 생산에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토머스 대표 역시 “미국과 호주를 중심으로 양 사의 제품을 통합해 출시할 것”이라며 “미국에서는 이미 볼파라와 루닛 제품을 함께 구매해 사용하는 곳도 있다”고 덧붙였다.
루닛은 볼파라와 함께 제품 기술을 고도화하면서 시장과 진단 영역도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현재 두 회사는 사업 기회가 큰 미국 유방암 검진 시장을 집중 공략하고 있다. 토머스 대표는 “최근 볼파라는 기존 AI에 폐암과 폐 결절 조기 진단 소프트웨어를 연계해 사용하는 등 유방암 이외 시장으로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며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갖춘 루닛 AI를 탑재하면 유방암과 폐암·신장암 등 다양한 검진 시장 공략에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서 대표는 “유럽·중동·중남미·아시아 시장에도 진출해 암 진단 시장을 선도하겠다”고 말했다.
서 대표는 “양 사가 각각 400억 원씩의 매출을 올리고 내년에는 합쳐서 1000억 원 이상의 매출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AI를 통한 암 정복이라는 우리의 미션을 추진해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