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철옹성’ 같았던 대기업의 호봉제에 금이 가고 있다. 사실상 ‘근무 기간’에 따라 임금을 책정하는 호봉제로는 능력에 따른 공정한 보상(임금)을 원하는 청년을 붙들 수 없다는 한계를 노사가 직면한 데 따른 현상으로 풀이된다.
26일 고용노동부의 ‘사업체 노동력 조사 부가 조사’에 따르면 대기업에 속하는 근로자 1000인 이상 사업체의 호봉제 도입률은 지난해 65.1%로 2021년(70.3%) 이후 2년 만에 5.2%포인트나 하락했다. 같은 기간 300인 이상 사업체도 60.1%에서 58.4%로 낮아졌다.
대기업 임금체계의 대명사로 불리는 호봉제는 근속연수가 길어질수록 임금이 높아지는 구조다. 호봉제를 도입하는 대기업은 한때 70%를 웃돌았으나 현재는 60%대로 내려앉았다. 근로조건이 나쁘면 이직을 결심하는 젊은 층의 요구를 사측은 물론 노조까지도 수용한 결과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임금체계가 노조 또는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 없이 바꾸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실시한 경제활동인구 청년층 부가 조사에서 이직 사유 1위로 ‘근로 여건 불만족(45.9%)’이 꼽힌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호봉제 도입률이 5%포인트나 떨어진 것은 우리나라 임금체계의 큰 변화를 예고한다”며 “청년들의 공정을 중시하는 경향이 그동안 임금체계 변화에 대해 고민이 깊던 대기업이 결심하는 데 일종의 추동력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