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전남 완도 명사십리 해변에서 샷을 익힌 최경주는 벙커에서 일찌감치 일가(一家)를 이뤘다. 평소 “벙커는 피하는 게 아니라 인정하고 극복해야 할 장해물이다”라는 지론을 가졌던 그는 미국 무대에서도 과감한 공략을 했고, 그 결과가 PGA 투어 통산 8승으로 이어졌다. 이에 비해 아마추어 골퍼들은 벙커만 보면 공포심을 느낀다. ‘벙커 해법’을 모르니 그럴 수밖에 없다.
사진은 지난 19일 끝난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SK텔레콤 오픈 최종 4라운드 1번 홀에서 최경주가 벙커 샷을 하는 모습이다. 두 번째 샷이 그린 옆 벙커에 빠졌는데 세 번째 샷을 홀 가까이 붙여 파 세이브에 성공했다. 최경주는 이 대회에서 만 54세 생일에 우승하며 국내 최고령 우승 기록을 새롭게 썼다.
최경주가 말하는 벙커 샷 요령은 다음의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왼손 돌리지 말고 7번 아이언 치듯 강하게 때려라.”
먼저 손목에 대해 알아보자. 일반적인 샷을 할 때는 임팩트 이후 릴리스 단계에서 왼손이 자연스럽게 돌아가는데 왜 벙커 샷을 할 때는 단단히 고정하라고 하는 걸까. 벙커 샷의 핵심은 모래의 충분한 폭발력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 폭발력은 클럽의 바운스(헤드 아래 불룩한 부분)에서 나온다. 바운스 덕분에 클럽이 모래 속으로 박히지 않으면서 모래를 떠올리는 것이다. 그런데 왼손을 돌리면 바운스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클럽은 모래에 박히고 만다. 사진을 보면 클럽 페이스가 끝까지 최경주의 얼굴을 향하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임팩트 이후에도 손목 각도를 처음과 똑같이 유지했다는 뜻이다.
손목 각도 유지를 위해서는 몸통과 팔이 함께 회전하는 게 중요하다. 몸통은 뻣뻣하게 둔 채 팔로만 때리게 되면 손목이 돌아가게 된다. 이와 달리 상체와 팔이 같이 돌면 손목 각도가 변하지 않는다. 양손을 가슴 앞에 유지하면서 허리띠의 버클까지 목표 방향으로 돌린다는 느낌을 가지면 몸과 팔이 따로 놀지 않는다.
두 번째로 볼 뒤 모래를 얼마나 세게 내려 치느냐도 중요하다. 샷 거리마다 조금 다르겠지만 최경주는 기본적으로 7번 아이언 휘두르듯 때리라 조언한다. 그 정도로 강하게 쳐야 모래의 충분한 폭발력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벙커 샷의 최우선 과제는 ‘탈출’이다.
[서울경제 골프먼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