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그룹과 SSG닷컴 재무적 투자자(FI)들이 30% 지분을 제3의 투자자에게 되파는 방식으로 풋옵션(특정 가격에 주식을 팔 권리) 갈등을 해소하면서 정용진 신세계 회장의 ‘통 큰 결정’이 투자은행(IB) 업계에 화제가 되고 있다.
5일 IB업계에 따르면 이마트와 신세계는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BRV캐피탈이 가진 SSG닷컴 지분 30%(보통주 131만6492주)를 올해 말까지 신세계그룹 측이 지정하는 단수 또는 복수의 제3자에게 매도하기로 합의했다고 지난 4일 공시했다. 연말까지 새 투자자를 찾지 못하면 신세계그룹이 FI 지분 30%를 되사도록 했다. 합의 금액은 1조1500억 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분쟁의 씨앗이 됐던 풋옵션 효력도 사라졌다. IB업계 관계자는 “신규 투자자 여부를 떠나 신세계가 신의가 있다”고 치켜 세웠다. 또 다른 관계자는 “어피너티는 투자금 이상을 받게 돼 만족스러워 할 것”이라고 말했다.
풋옵션 행사가 지난달 1일부터 가능해지면서 양측은 투자금 회수와 관련한 협상을 진행해왔다. 최초 FI측은 “계약서대로 하자”며 1조 원 중반 이상의 금액을 요구했다. 정용진 신세계 회장은 처음부터 법적 분쟁은 없다고 결정했다. 어피너티·IMM 프라이빗에쿼티(IMM PE)·EQT파트너스 등의 FI들이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과 수년 째 풋옵션 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지난 3월 회장에 승진한 이후 골프와 SNS도 모두 끊고 경영에 전념하고 있어 불필요한 잡음이 일어나기를 원하지 않았다. 다만 FI측의 요구가 과하다고 판단해 합의 수준을 낮추도록 협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관건은 새로운 투자자를 연내 찾아야 하는 부분이다. 신세계측은 “SSG닷컴 지분 투자에 관심 있는 금융사 및 투자자들과 협의를 시작했다”며 “가급적 연말 전까지 신규 매수자를 선정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외국계 사모펀드(PEF) 운용사가 관심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신세계는 별도의 매각 주관사 없이 자체적으로 협상을 진행할 계획이다.
한편으로는 FI들이 투자할 당시 SSG닷컴 기업가치가 3조3000억 원이었는데 이커머스 시장이 어려운 현재 그 가치를 인정받기 힘들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이 경우 신세계그룹은 자산 매각 등을 통해 자금을 마련해야 한다. 사실상 6개월의 시간만 주어진 셈이다.
어피너티·BRV캐피탈은 지난 2018년 10월 신세계그룹과 투자 약정을 맺고 2019년 7000억 원, 2022년 3000억 원 등 총 1조 원을 투자해 SSG닷컴 지분을 각각 15% 확보했다. 나머지는 이마트(45.6%)와 신세계(24.4%)가 나눠 갖고 있다.
당시 계약서에는 2023년까지 SSG닷컴 총거래액(GMV)이 5조1600억 원을 넘지 못하면 신세계그룹이 지분을 다시 사들이는 풋옵션 조항도 포함됐다. 신세계측은 SSG닷컴의 2022년 총거래액이 5조7000억 원을 넘겨 계약사항을 모두 지켰다는 입장인데 반해 FI들은 상품권 거래액이 포함돼 과다 계상됐다고 맞선 바 있다. 만약 양측이 소송전으로 갔다면 회계처리의 적정성이 논란이 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