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텀을 보내며 마지막으로 외쳐본다. 하늘의 도깨비, 굿바이 팬텀!”
이재우 공군 예비역 소장(90)이 7일 오전 공군 수원기지에서 열린 ‘F-4E 팬텀 퇴역식’에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애기’ 팬텀에 작별을 고했다.
1969년 8월29일 당시 34살이던 이재우 공군 중령은 미국에서 팬텀기(F-4D)를 이틀 간 몰아 태평양을 건너 공군 대구기지에 내렸다. 1968년부터 이 중령을 비롯한 공군 조종사 6명은 팬텀 도입요원으로 미국에 건너가 인수교육을 받았다. 1968년 한반도는 사실상 전시 상태였다. 그해 1월21일 북한 특수부대의 청와대 습격 사건과, 이틀 뒤인 1월23일 발생한 미국 정보함 푸에블로호 납북 사건이 일어났고 남북은 이틀에 한번 꼴로 군사분계선에서 교전을 벌였던 상황이었다.
이재우 예비역 소장은 이날 팬텀 퇴역식에서 “당시 최신예 팬텀을 타고 공중급유를 받으며 대구기지 활주로에 안착시킨 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심장이 요동친다”고 했다. 1969년 당시 공군은 세계 최강의 신예기였던 F-4D를도입해 북한 공군력을 압도할 수 있었다고 공군은 설명했다.
이날 행사장에는 ‘호국영웅석’이 마련됐다. 여기에는 팬텀을 타고 임무를 수행하다 순직한 조종사 34명의 이름과, 추락한 팬텀 19기의 기체 번호가 적힌 안내판이 놓였다. 이영수 공군참모총장은 기념사 도중 순직한 조종사 34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이들의 헌신과 희생을 기렸다.
지난 55년간 한반도 상공을 지켜온 ‘하늘의 도깨비’ F-4 팬텀 전투기가 7일 마지막 비행을 끝으로 퇴역했다.
공군은 이날 공군 제10전투비행단에서 신원식 국방부 장관 주관으로 F-4 팬텀 퇴역식을 거행했다.
F-4E 2대는 이날 신원식 장관의 출격 명령 하달 이후 마지막 비행을 했다. F-4E 전투기가 행사장으로 들어오는 동안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는 행사장 상공에서 화려한 기동을 선보이며 ‘큰 형님’ 전투기의 퇴역을 축하했다.
마지막 비행을 마친 조종사들은 신 장관에게 팬텀의 조종간을 증정하며 임무 종료를 보고했다. 조종간을 건네받은 신 장관은 팬텀 기체에 ‘전설을 넘어, 미래로!’라고 적고 기수에 축하 화환을 건 뒤 명예전역장을 수여했다. 팬텀이 미국에서 처음 출고된 1958년에 태어난 공사 29기 예비역 조종사들도 함께 명예전역장을 받았다.
신 장관은 “팬텀과 함께한 지난 55년은 대한민국 승리의 역사였다”며 “자유세계의 수호자인 팬텀이 도입되자 대한민국은 단숨에 북한의 공군력을 압도했으며 이때부터 북한의 공군은 더 이상 우리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신 장관은“팬텀은 죽지 않고 잠시 사라질 뿐”이라며 “대한민국 영공수호에 평생을 바친 팬텀의 고귀한 정신은 세계 최고 수준의 6세대 전투기와 함께 우리 곁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이영수 총장도 “팬텀은 공군의 전설이며, 50년 넘는 여정은 그 자체로 빛나는 공군의 역사”라며 “영원히 기억하고 기쁘게 추억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비행한 F-4E 2대 중 1대는 한국 공군 팬텀의 과거 모습이었던 정글무늬로 복원한 항공기다. 공군은 지난 5월 ‘필승편대’의 국토순례비행을 앞두고 팬텀 퇴역의 역사적 의미를 기념하기 위해 팬텀의 과거 모습인 정글무늬와 연회색 도색을 복원했다.
공군은 이날 행사에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 시 ‘호국영웅석’에 조종 헬멧과 태극기를 헌정했다. ‘호국영웅석’은 F-4 팬텀과 함께 임무를 수행하다가 불의의 사고로 순직한 조종사들을 기리는 자리다. 조종 헬멧은 순직조종사를, 태극기는 조종사들의 숭고한 희생을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이날 팬텀 퇴역식에서는 팬텀과 함께해온 전직 임무 요원에게도 감사장이 수여됐다. 1969년 F-4D 첫 도입 당시 조종사와 정비사로 활약했던 이재우 동국대 석좌교수, 이종옥 예비역 준위가 팬텀 전력화에 기여한 초창기 임무 요원을 대표해 감사장을 받았다.
F-4 팬텀은 1969년 공군에 처음 도입됐다. 당시 세계 최강의 신예기였던 F-4D를 도입하면서 북한 공군력을 압도할 수 있었다. 공군은 F-4D와 함께 개량형인 F-4E, RF-4C 등 총 187대의 F-4 기종을 운용했으며 이 가운데 F-4D와 RF-4C는 2010년과 2014년 각각 퇴역했다. 팬텀은 소흑산도 대간첩 작전과 미그기 귀순 유도, 옛 소련 핵잠수함 식별과 차단, 러시아 정찰기 차단과 퇴거 작전 임무 등을 수행했다.
F-4 팬텀 전투기의 퇴역전 마지막 비행은 감동 그 차제였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의 출격 명령이 떨어지자 무대 뒤편 활주로에서 F-4E 팬텀 전투기 2대가 날아올랐다. 육중한 엔진소리는 관람객들의 심장을 고동치게 하기 충분했다.
팬텀 2대는 32분 간의 고별 비행을 마치고 활주로에 내렸고 잠시 뒤 행사장 무대 중앙으로 들어섰다. 이들은 무대 양옆으로 세워진 6대의 팬텀과 함께 행사장을 가득 메웠다.
조종사가 팬텀의 시동을 끄고 내리자 객석의 관중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일어나 손뼉을 치며 환영했다.
한 대당 2명씩 모두 4명의 조종사는 행사를 위해 따로 준비해 둔 조종간을 신원식 장관에게 상징적으로 넘기며, 모든 임무가 끝났음을 알렸다.
이날 후배 전투기들이 내는 굉음과 퇴역식 참석자들의 축하 속에서, 팬텀의 55년간 영공수호 임무는 ‘해피 엔딩’으로 막을 내렸다.
‘후배 전투기’들도 선배 팬텀의 퇴역을 축하하는 비행에 나선 것이다.F-16 5대는 55발의 플레어(섬광탄)를 발사해 55년간 대한민국 영공을 수호한 팬텀을 기렸다.
1969년 F-4D 6대 도입과 1975년 방위성금 헌납기 5대 인수를 기념하고자 KF-16 6대와 FA-50 5대가 비행했으며, 정찰기 RF-4C의 임무를 이어받은 RF-16 2대도 하늘을 날았다.
팬텀의 모(母)기지였던 대구·청주·충주기지를 대표하는 F-15K와 F-35A, KF-16이 각각 3대씩 총 9대가 편대를 이뤄 비행했다. 마지막으로 5세대 스텔스 전투기 F-35A 3대가 무대 중앙 상공을 가르며 공군 전투기의 세대교체를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