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깅꼬부부’를 만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여행을 앞두고 유튜브에 올라온 이런저런 영상들을 찾아봐서인지, 일본으로 다녀온 가성비 골프여행을 소개하는 영상이 화면에 등장했다. ‘18홀 그린피에 카트비, 점심까지 인당 6만 원대라고?’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손가락은 이미 스마트폰 화면의 섬네일을 누르고 있었다. 채널명은 ‘깅꼬부부(골프. 여행. 은퇴생활)’. 그렇게 깅꼬부부와의 인연(정확히는 깅꼬부부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영상과의 인연이겠지만)은 시작됐다. 남들보다 이른 은퇴 후 태국, 일본, 캐나다, 유럽 등에서 골프를 치며 여행을 즐기는 이들의 모습에 ‘과연 어떤 일을 해왔기에’, 또 ‘어떻게 살았기에’라는 궁금증도 더해갔다.
결국 이들에게 e메일을 보냈다. 연락한 취지를 설명하기 위한 몇 번의 문자메시지와 전화가 오간 뒤 이들은 취재를 수락했다. 4일 경기 고양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유튜브 채널 ‘깅꼬부부’ 운영자 김남수(55), 고황경(49)씨는 기자의 질문에 솔직하게 답변했다. 골프가 아무리 대중화됐다고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비용 등의 측면에서 자주 즐기기에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 때문에 골프를 즐긴다고 하면 “재산 깨나 있나보네”라며 곱지 않은 시선을 던지는 이들도 있다. 부부도 이를 의식한 듯 “자녀가 없는 대신, 자녀에게 들어갈 만큼의 돈을 20여 년간 알뜰하게 모으며 은퇴 후를 준비해왔다”며 “가성비 골프 여행을 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 간단히 자신을 소개해 달라.
◇고황경(이하 고): 저희는 2년 전 은퇴한 뒤 골프를 치며 여행을 즐기는 부부입니다. 둘은 그동안 트럼펫 연주자로 살아왔어요. 남편은 시립교향악단 소속이었는데 2022년 4월에 퇴직했고, 저는 학교 등에 출강해왔고요. 지금은 유튜브에서 가성비 골프 여행기를 주로 소개하는 ‘깅꼬부부’ 채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 영상의 주된 키워드가 골프, 여행, 은퇴더라. 골프는 언제 시작했나.
◇고: 저는 2021년 3월에 골프채를 처음 잡았어요. 오래되진 않았어요. 이전부터 주위에서 배워보라는 권유를 많이 받았지만 주말에도 일을 하고 돈도 많이 드는 취미인 것 같아 배우진 않았어요. 그런데 코로나19로 시간이 많이 생기면서 배워보기로 했지요.
◇김남수(이하 김): 저는 아내보다 한 달 뒤에 시작했어요. 먼저 시작한 아내가 재미를 느끼면서 함께하면 더 좋겠다기에. 처음엔 같은 동작만 반복하고, 잘 치려는 욕심에 채를 힘껏 휘두르다가 목 부위에 탈이 나기도 하고. 재활과 연습을 반복하다 그해 11월에야 처음 필드에 나갔는데, 생각 이상으로 재밌더라고요. 부부가 푹 빠져버렸지요.
- 어떻게 골프여행을 다닐 생각을 했나.
◇고: 골프가 재미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너무 비싸잖아요. 부부가 라운딩 한 번 나가는데 수십만 원이 드니 부담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외국으로 눈을 돌렸지요. 경치가 훨씬 좋은 곳도 많고요. 비용은 적게 들면서도 멋있고 아름다운 곳을 찾아 우리가 좋아하는 골프를 친다는 게 매우 좋았어요.
◇김: 여행할 때 가장 중요한 건 ‘힐링’이라고 생각해요. 여행지에서 유명한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가는 것도 좋긴 했는데, 저는 그림 등을 보며 ‘힐링 된다’거나 ‘푹 빠져든다’는 감정은 크게 못 느꼈거든요. 골프는 다르더라고요. 자연 속에서 푸른 하늘과 숲, 멋진 풍경을 배경으로 운동을 즐기니 정말 좋더라고요. 그 속에서 숨 쉬고 어우러지는 느낌이 일반 여행과는 많이 달랐어요.
- 혹시 골프여행의 재미에 빠져 은퇴를 결정했나.
◇김: 설마요. 오래 전부터 이른 은퇴를 생각했어요. 저희가 1998년에 결혼한 뒤 프랑스 파리에서 4년간 유학생활을 했어요. 그때만 해도 음악을 업으로 삼으려면 악기와 24시간 붙어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프랑스인들은 다르더라고요. 방학 때 학교에 나가 연습하는 저희에게 선생님은 ‘여기서 뭐 하냐, 여행을 떠나라’더군요. 학기 중에는 몰입하더라도 여유를 즐길 줄 아는 거죠. 프랑스에서 살았던 4년이 일과 삶을 바라보는 시각을 완전히 바꾸는 전환점이 됐어요. 그래서 저희 둘은 ‘열심히 돈을 벌고 조금 일찍 여유로운 삶을 살자’는 얘길 하곤 했지요.
◇고: 저희가 아이를 가지려고 많은 노력을 했어요. 그런데 잘 안 되더라고요. 그 와중에 유방암 진단을 받았어요. 30대 초반이었지요. ‘난 아직 젊고, 그동안 열심히 살았는데 그 결과가 고작 죽음인가’ 싶더라고요. 다행히 잘 치료를 받아 완치됐지만, 큰 충격을 받았지요. 그 때문에 ‘현재를 즐길 줄 아는 삶’에 관한 욕구가 커졌어요. 좀 더 젊고 건강할 때 일찍 은퇴해서 좋은 곳을 많이 다녀야겠다는 꿈을 가졌지요. 꿈을 꾸면 완전히 이루지는 못해도 가깝게는 가잖아요. 지금의 삶은 그때부터 꿈을 꾼 덕분인 것 같아요.
-이른 은퇴를 위해서는 자금 마련 등 현실적인 준비도 필요할 텐데.
◇고: 저희는 자녀가 없잖아요. 다른 부부들이 자녀를 키우는데 쓰는 비용을 저희는 노후를 준비하는데 쓰기로 했지요. 제게 10살 위의 큰언니와 8살 위인 작은언니가 있는데, 저보다 훨씬 먼저 비슷한 고민을 했던 터라 재테크를 하는데 시행착오를 다소 줄일 수 있었어요. 은퇴하기 4년 전부터는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인터넷 카페에 가입해서 많은 도움을 받았고요.
◇김: 저희 영상을 보신 분들은 잘 아시는데, 저희가 정말 돈을 아껴 써요. 유학생활 때도 우리나라가 한창 외환위기일 때라서 양가 도움을 받기 힘들었거든요. 준비한 돈을 다 쓰고 남은 2년은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냈어요. 아내는 면세점, 저는 마트에서 배달을 하면서 생활비와 학비를 충당했어요. 아마도 그때의 경험 때문인지 생활비를 좀 줄여도 그럭저럭 불편하지 않게 지낼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 이른 은퇴를 실행으로 옮기기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고: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요. 저희는 코로나19때 오히려 은퇴할 용기를 갖게 됐어요. 저희가 트럼펫을 연주하잖아요. 관악기는 입으로 부는 악기라 코로나19로 타격을 많이 받았어요. 학교 수업도 할 수 없고 레슨도 사라졌어요. 본의 아니게 2년 넘게 가진 것을 모두 내려놓고, 어쩌면 은퇴 후 생활을 간접적으로 체험한 거죠. 소비를 줄이니 생활이 가능하겠더라고요.
◇김: 생활비를 은퇴 전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였어요. 예전에는 부부가 카페도 자주 가고 외식도 종종 했지만, 지금은 확 줄였지요. 식당도 둘이 합쳐 3만 원 안쪽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곳을 찾아가요. 연금이 나올 때까지 계획적으로 생활비를 쓰고, 이후에는 주택연금 등도 생각하고 있어요.
-부부가 다니는 골프여행의 또 다른 콘셉트인 ‘가성비 여행’은 정말 ‘짬바(짬에서 나온 바이브)’라고 볼 수 있겠다.
◇고: 맞아요. 파리 생활 때도 하고 싶은 건 많은데 수중에 돈은 없으니 무엇이든 가성비를 우선으로 했지요. 상품을 사더라도 가격표부터 찾아보고요. 골프도 마찬가지에요. 한두 번 치고 말 건 아니잖아요. 비싼 구장을 간다고 실력이 느는 것도 아니고요. 되도록 지출은 최소화하면서도 여러 번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해외 골프 여행으로 이어진 셈이지요.
- 유튜브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고: 언니가 권했어요. 은퇴를 결정하고 여행을 다니는 모습이 흔하지는 않으니 영상으로 남겨보라고 하더라고요. 처음엔 휴대전화로 찍어서 편집을 하는데 너무 어려웠거든요. 자막 달기 어려워서 자막도 빼먹고. 그런데 반응이 좋더라고요. 시작한 지 1년 반쯤 됐는데 구독자가 6200명쯤 돼요. 올 초에는 구독자들과 정보도 교환하고 소통하려고 밴드를 개설했는데 300명 정도 가입했어요. 스크린골프장에서 ‘정모’도 열고, 해외 골프 여행에 동반하기도 하는 등 건전하게 만나고 있어요.
- 유튜브를 통해 부부의 일상에도 변화가 생겼을 것 같다.
◇김: 새로운 활력이 생겼어요. 이른 은퇴를 하자는 아내의 말에 처음에는 망설였어요. 돈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무료하고 외로울 것이라는 걱정이 컸거든요. 그런데 아내가 유튜브를 시작하면서 은퇴 후에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삶을 공유하고 소통하며 살 수 있다는 건 생활에 정말 큰 활력이지요.
- 깅꼬부부의 향후 계획과 목표는.
◇고: 유튜브를 잘 운영해보려고 해요. 해외로 골프여행을 가보려는 분들에게 현실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정보도 많이 드리고. 특히 저희의 트레이드마크인 ‘가성비 골프여행’을 앞으로도 잘 보여드리려고 해요. 새로운 여행지도 많이 발굴해보려 합니다.
◇김: 부부가 건강하게 운동하고 즐겁게 지내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한 번도 외국으로 골프여행을 나갈 생각을 못해봤는데 저희 영상을 보고 자신감을 얻었다는 분도 계시더라고요. 이런 분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는 깅꼬부부가 되겠습니다.
덧.
참, 이들의 유튜브 채널명 ‘깅꼬부부’는 이들의 성(김과 고)에서 따왔다고 한다. 유튜브 채널 개설을 제안한 고씨의 언니가 “‘김고부부’를 조금 재밌게 부르면 ‘깅꼬부부’인데, 입에도 잘 붙고 개성 있어 괜찮지 않겠느냐”며 강력 추천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