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역시 평생 환자 진료와 연구만 했던 사람입니다. 환자 곁을 떠난다는 말을 꺼내기가 어찌 안타깝지 않겠습니까. (의사들이)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국민들이)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
이진우 대한의학회장(연세의대 세브란스병원 정형외과 교수)은 10일 서울 중구 콘퍼런스하우스 달개비에서 기자들과 만나 "의대 증원을 둘러싼 의정갈등을 해결하려면 정부의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며 이 같이 말했다.
대한의학회는 193개 전문학회가 회원으로 가입돼 있는 의학 학술단체다. 이 회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2024 대한의학회 학술대회'를 소개한 이후 휴진에 대한 입장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집단 휴진까지 가지 않도록 그 전에 문제가 타결되길 바란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것은 정부 아닌가. 지금이라도 (정부가)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준다면 얼마든지 논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다만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견해라고 단서를 달았다. 집단휴진과 같은 단체행동이 한국의 의료계를 보다 더 굳건하게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 믿기에 의협과 뜻을 같이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한의학회는 정부가 지난 4일 각 수련병원에 내린 전공의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을 철회하자 "복귀한 전공의에 대한 행정 처분만 중단하겠다는 것은 대다수 전공의의 복귀를 어렵게 하는 차별적 행정"이라며 강도높게 비판했다. 전공의에 대한 행정 처분을 철회하는 게 아니라 전면 취소돼야 한다고 요구하며 대한의사협회(의협),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와 함께 집단행동에 나서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지난 4월에 출범한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의개특위)에도 참여를 거부하며 의협,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와 노선을 같이 하고 있다.
이 회장은 의개특위에 보이콧을 선언한 이유에 대해 "정부와 신뢰 관계가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정책적 대안이 정당하게 추진될 수 있는 체계가 담보되지 않은 채 특위에 참여하면 현 정책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역할만 하게 될 것이란 것이다.
이날 참석한 의학회 주요 인사들은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의정갈등 해결의 전제로 정부의 태도변화를 꼽았다. 의료계 대표 단체와 정부가 일대일로 만나 의사 인력을 추계할 수 있는 대화의 장을 마련해 놓고 논의의 전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자는 요구다.
이들은 의대 증원을 비롯해 정부가 의료개혁을 빌미로 내놓는 정책들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비판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 9일 전공의 연속 근무와 주당 근무시간의 단축 방안을 내년 상반기까지 마련하겠다고 공언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박용범 대한의학회 수련교육이사(연세의대 세브란스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는 "전공의 근로시간 단축 시범사업은 좋은 의미를 담고 있지만 충분히 경험을 쌓는 기간이 확보될지, 주당 근로시간이 줄면 전체 수련시간이 늘어나는 것은 아닌지 고려해야 한다"며 "의료계에서 오랫동안 수련 교육을 담당했던 이들의 의견이 충분히 들어간 상태에서 안이 나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근로 및 수련시간을 줄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며, 전공의들의 수련을 내실화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전공의 수련환경을 개선하고 전문의 중심병원으로 전환하는 데 드는 재원 마련이 전제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 회장은 "지도 전문의 채용을 포함해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에 대한 비용을 정부가 부담해야 하는데 정부가 약속한 예산을 국회에서 받을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며 "전문의는 어디서 구하며 그 비용은 누가 댈 것인지, 이런 구체적인 내용조차 없다는 게 가장 큰 맹점"이라고 꼬집었다.
의학회는 최근 의사인력 추계·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지역 및 필수의료 강화·기초의학 교육 등에 관한 5개의 태스크포스(TF)를 만들고 논의를 시작했다. TF 차원에서 한국 의료체계 전반을 들여다 보고 근본적인 해법을 마련하기 위한 정책 보고서를 낼 예정이다. 오는 14일에는 서울 서초구 더케이호텔에서 전공의 수련과 지역의료 활성화 등 의료 현안이 되는 주요 정책을 고민하는 학술대회를 연다.
이 회장은 "의료계가 원하는 것은 합리적인 토론을 통해 (의대 증원을 포함한) 의료 정책을 합리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라며 "미래 의료, 의학 교육 등 다방면에 대한 정책 토론을 이끌어 나가려 한다"고 학술대회의 취지를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