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용 메모리 시장에서 고부가 쿼드러플레벨셀(QLC) 낸드 제품의 중요성이 급격히 커지고 있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자체 AI 서버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고용량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를 대거 도입한 영향이다. 이러한 추세가 지속된다면 지난해 그래픽처리장치(GPU) 수요를 타고 AI 반도체 핵심으로 자리 잡은 고대역폭메모리(HBM)만큼의 폭발적 수요 성장이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11일 시장조사 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올해 QLC 낸드 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85%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체 낸드 시장에서의 비중도 지난해 12.9%에서 올해 20.7%로 8%포인트 가까이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옴디아는 2027년 전체 낸드 시장에서 QLC 낸드의 비중이 46.4%까지 상승할 것으로 봤다. 3년 만에 비중이 두 배 이상 커질 것으로 전망한 것이다. 현재 시장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트리플레벨셀(TLC·51%) 제품에 근접한다. 특히 지난해까지만 해도 QLC 낸드의 적용 제품이 소비자용 위주였다면 올해부터는 단가가 높은 서버향 위주로 수요 성장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QLC는 데이터 저장 단위인 셀 한 개에 4개의 비트를 저장할 수 있는 기술이다. TLC는 세 개의 비트를, 멀티레벨셀(MLC)과 싱글레벨셀(SLC)은 각각의 소자에 2개와 1개의 비트를 담는다. 같은 단수의 낸드라도 QLC 낸드의 경우 저장 용량을 추가로 늘릴 수 있는 셈이다.
이러한 QLC 낸드의 특징은 생성형 AI를 자체 서버에 탑재하려는 빅테크 기업들의 요구 조건과 부합한다. 기존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 제품보다 빠른 속도로 데이터 읽기·쓰기가 가능한 SSD를 채택하는 과정에서 단위 면적당 더 많은 정보를 기억하면서 소비전력도 줄일 수 있는 제품 장점이 부각된 것이다.
확산 장벽이었던 HDD와의 가격 차이도 빠르게 좁혀지고 있다. 서버용 기준 SSD와 HDD 간 가격 격차는 2015년 20배 수준에서 올해 들어 10배까지 축소됐다. 2022년 하반기 이후 낸드 시장이 전반적인 다운사이클에 진입하며 SSD 원가 축소로 이어진 것이다. 쓰기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리고 수명이 짧다는 제품 단점의 경우 최근 데이터센터의 작업 처리 방식이 읽기 위주로 전환되며 상쇄가 됐다.
낸드 제조사들도 QLC 낸드 수요 급증에 빠른 속도로 대응하고 있다. QLC 제품을 기반으로 ‘낸드의 봄’ 강도가 예상보다 더욱 셀 것이라는 낙관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해 AI 수요를 기반으로 한 HBM 수요 성장이 단기에 그치지 않고 중장기 시장 형성으로 이어진 것처럼 낸드 시장에서도 이 같은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000660)의 ‘아픈 손가락’이었던 낸드 자회사 솔리다임의 수혜가 클 것으로 예상한다. 지난해 말 기준 솔리다임의 전체 생산 물량 중 60%가 QLC 낸드일 정도로 비중이 높다. 시장점유율 면에서는 마이크론(40.1%)이 솔리다임(21.1%)보다 높지만 마이크론의 경우 소비자용 제품의 비중이 높다. AI 서버에 들어가는 고부가 QLC SSD 공급은 솔리다임과 삼성전자(005930)가 주도할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는 올해 하반기 280단대 9세대 낸드를 QLC 방식으로 양산할 예정이다. SK하이닉스는 솔리다임을 통해 QLC 60테라바이트(TB) 제품을 내놓는 한편 SK하이닉스에서도 QLC 기반 60TB, 내년 300TB 제품까지 준비하며 AI향 수요에 최대한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고영민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SK하이닉스는 올해 상반기 중 솔리다임의 가동률 상향을 통해 수요 대응을 위한 물량 확대를 진행하고 있고 하반기 중 경쟁사들 대비 고용량 제품 내 독점적 출하 가능성이 높다”며 “삼성전자는 하반기 중 QLC 기반 고용량 eSSD 출시 및 램프업을 목표 중으로 본격적인 실적 기여는 내년부터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