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스포츠

골프 레슨에서 ‘보조’ 넘어 ‘필수’된 IT 기기

국내 기술로 개발된 한국의 대표적 퍼팅 연습 시뮬레이터인 투어펏. 사진 제공=브로틴국내 기술로 개발된 한국의 대표적 퍼팅 연습 시뮬레이터인 투어펏. 사진 제공=브로틴




골프 레슨 생태계가 변화하고 있다. 트랙맨, 포어사이트 등 론치모니터나 3차원(3D) 골프 스윙 분석기 등 데이터 기반 IT(정보기술) 기기 사용이 보편화하는 움직임이다. IT 기기 등을 레슨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교습가들이 그렇지 않는 경우보다 많아지며 연습장에서 샷 데이터를 표시한 모니터는 자연스러운 장치가 됐다.



급격한 변화에 따라 감에 의존하는 방식의 교습가들은 신기술을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원래 방식을 고수할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됐다.

현장에서 입문자부터 프로까지 직접 지도하고 있는 유명 레슨 프로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그들을 만나 레슨 분야에서 불고 있는 AI(인공지능)와 IT 바람에 대해 물었다.

정확한 스윙 분석에 없어서는 안 될 IT 기기

골프 스윙은 스스로 몸을 비틀어 팔을 이용하고 하체의 탄력을 생성하게 만드는 운동이다. 몸통의 비틀림을 이용해 일정한 모션을 만든 뒤 에너지를 방출하는 방식은 다른 종목에선 찾아보기 어렵다. 이 때문에 골프는 매우 민감한 운동으로 불린다.

예민한 운동일수록 처음 어떻게 입문하느냐가 중요하다. 자세나 스윙 방법 등에서 입문 초기 방향 설정에 실패하면 그대로 굳어져 이를 수정하는 데에 많은 노력이 따르게 된다.

이 때문에 골프는 다른 운동보다 더욱 입문자를 바른 길로 인도해줄 교습가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스포츠로 인식돼 왔다. 교습가들이 가지고 있는 오랜 경험적 측면이 IT 기기 등 데이터에 우선한다고 보는 이들도 많았다.

골프 레슨에서 IT 기기가 가장 깊숙하게 침투해 있는 분야는 스윙 교정이다. 수십 개의 센서가 달린 ‘쫄쫄이’ 의상을 입고 초고속 카메라 앞에서 스윙을 하면 잘못된 스윙 메커니즘이 고스란히 데이터로 표시된다.

또한 론치모니터를 통해 날아가는 볼의 빠르기와 방향, 발사 각도 등을 분석해 현재 스윙 메커니즘에서 부족한 점을 곧바로 찾아낼 수도 있다.

스윙 데이터를 보며 분석 중인 조민준 BTY 골프아카데미 원장. 이종호 기자스윙 데이터를 보며 분석 중인 조민준 BTY 골프아카데미 원장. 이종호 기자


현재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활약하고 있는 이소영, 이다연, 조아연, 김민선5 등을 지도한 조민준 BTY 골프아카데미 원장은 스윙 부분에서 IT 기기의 사용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고 말한다. 그는 “이제는 트랙맨 같은 기기는 레슨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돼 버렸다. 분석기기를 통해 교습가들도 데이터를 확인하면서 더 자신감 있는 레슨이 가능하다. 그 자신감이 고스란히 선수에게 전달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고진영 등을 지도한 이시우 빅피쉬 골프아카데미 원장도 비슷한 생각이다. 이 원장은 “레슨 때 분석기기를 통한 데이터를 보면서 의견을 나누는 것은 이제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볼이 날아가는 것만 보고 레슨을 하면서 무작정 잡아가던 예전과는 아무래도 속도와 정확성 면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교습가들이 IT 기기 사용을 포기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직접 레슨을 받는 프로나 수강생들이 즉각 나아지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조 원장은 KLPGA 통산 4승을 거둔 김자영을 예로 들었다. 2015년 김자영이 레슨을 위해 조 원장을 찾았을 때 선수는 클럽페이스 각도가 열리는 것을 수정하길 원했다. 이 점만 보완하면 좋았던 폼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조 원장은 트랙맨 등의 분석기기를 통해 김자영의 타구 속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선수를 설득해 스윙 연습보다는 웨이트 트레이닝을 주문했다. 몸이 다 만들어진 후 스윙 연습에 들어갔다. 조 원장의 솔루션을 적용한 후 김자영은 2017년 5월 두산 매치플레이 챔피언십에서 박인비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김자영의 예처럼 분석기기를 통한 레슨으로 성과를 보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프로 선수들이 스스로 데이터를 보기 위해 찾아오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고. 조 원장은 “데이터를 통해 선수들에게 조언을 하니 더 특별하게 느끼는 선수들이 많아졌다. 성적을 내는 선수까지 생기다 보니 분석기기에 대한 신뢰가 커졌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새로운 퍼팅 훈련의 시대

열정적인 골퍼라면 집에 퍼팅 매트 하나 정도는 갖고 있을 것이다. 퍼팅 실력 향상을 위해 수십 번 수백 번 매트 위에서 스트로크를 하며 시간을 보냈지만 실력이 나아지는 것을 느끼는 것은 쉽지 않다. 이렇게 감에 의존하던 퍼팅 연습법이 최근에는 첨단 분석 기기의 도움으로 새로운 시대를 맞았다.

국내 기술로 개발된 한국의 대표적 퍼팅 연습 시뮬레이터인 투어펏은 과학적인 퍼팅 분석과 훈련을 돕는다. 투어펏은 AI, 증강현실(AR), 딥러닝, 빅데이터 등 최첨단 기술을 접목한 장비다. 투어펏은 먼저 퍼팅 분석을 위해 패턴 테스트를 실시한다. 패턴 테스트는 3%의 기울기로 설계된 인조 잔디 그린 위에서 3가지 거리와 12개 라인, 총 36개의 다른 지점에서 퍼팅을 해 퍼팅 성향을 파악한다. 기울기가 3%인 이유는 홀 주변에서 가장 많이 만나는 그린 경사이기 때문이다.

패턴 테스트가 끝나면 브레이킹 라인별 성공률과 각각의 스트로크 빠르기, 세기, 공의 출발 방향과 속도, 볼의 궤적 등을 데이터로 축적해 사용자의 퍼팅 스트로크 강점과 약점을 알 수 있다. 정밀 센서를 활용한 볼 트래킹은 잔디 위에서 볼이 굴러가는 모습을 시각화해줘 나의 퍼팅 거리감이 길었는지 혹은 짧았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또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투어펏으로 퍼팅한 모든 기록을 언제 어디서든 확인해볼 수 있는 것도 골퍼들의 향후 퍼팅 훈련에 도움을 준다.

최종환 코치. 사진 제공=브로틴최종환 코치. 사진 제공=브로틴


이러한 퍼팅 훈련법의 발달로 교습가들의 지도 방식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현재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활약 중인 이정은6, 이소미, 김아림, 성유진 등에게 퍼팅을 지도하고 있는 최종환 코치는 “예전에는 레슨이 말로만 하고 코치 입장에서 주입했다고 하면 지금은 데이터가 직접 드러나다 보니 학생 중심에서 학생이 납득하고 이해할 수 있는 ‘학생 중심의 교육’이 됐다고 본다”고 했다. 이어 “몇 년 전만 해도 연습 그린에 여러 장비를 놓고 퍼트 하나하나를 노트에 수기로 적으면서 레슨을 했었다”면서 “그런데 요즘은 기계의 도움으로 손가락 하나만 움직이면 선수 개인의 데이터가 자동으로 쌓이고 꾸준한 데이터 관리까지 가능해졌다. 예전에는 선수들이 어떤 부분이 안 됐는지 몰랐다면 최근에는 스트로크의 리듬, 방향성, 거리감 등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그 부분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훈련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첨단 분석 기기의 도움으로 퍼팅 훈련의 효율성과 신뢰성이 상승하면서 투어를 뛰는 선수들도 만족감을 보인다. 투어펏을 이용해 퍼팅 훈련 중인 2020년 US 여자오픈 챔피언 김아림은 “연습이 더 효율적으로 변했다. 개인의 패턴을 이해하며 코스매니지먼트도 쉬워졌다”고 했다. KLPGA 투어에서 뛰고 있는 윤이나는 “볼 트래킹 기술을 통해 시각화 훈련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투어펏을 활용해 최 코치로부터 지도를 받고 있는 선수들은 패턴 테스트로 성과 지표가 생긴다는 것에 큰 만족감을 드러냈다. 또 데이터가 알려주는 자신의 성향을 가지고 그린의 어느 쪽에서 퍼팅을 했을 때 퍼팅의 성공률이 높은지 객관적인 수치를 알고 있어 퍼트뿐 아니라 코스 공략에도 강점이 생긴다는 반응이다.

IT 발달에 교습가 설 자리 좁아진다?

골프계에서는 IT가 발달하면서 AI가 기존 교습가들을 대체하는 시대가 가까워졌다는 의견도 있다. 최 코치도 선수들을 지도하면서 AI의 뛰어난 학습 능력에 위기감을 느낀 경험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투어펏의 경우만 해도 레슨에 사용한 지 3~4년 정도 됐는데 요즘에는 패턴 테스트 결과에 맞춰 훈련 방향 등을 코멘트해 주는 AI가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지도한다. 그동안 제가 선수들을 지도하면서 입력한 데이터를 AI가 계속해서 학습하면서 테스트 결과에 대한 해석 알고리즘이 점점 더 완벽해지고 있다. 사실 최근에는 아주 잠깐 위기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래도 IT 기기가 교습가를 넘어설 수는 없다고 단언했다. 최 프로는 “AI가 훈련 방법을 추천까지는 할 수 있지만 교습가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지식이 접목되지 않으면 기계가 빛을 발하기 힘들다”며 “기계로 인해서 레슨이 쉬워질 수는 있지만 AI가 가지고 있는 공식이 답이 될 수는 없다. 단지 ‘대략적인 기준’만 된다고 생각한다. 투어를 뛰는 선수들에게 질 높은 코칭이 되려면 반드시 교습가의 역할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방신실은 지도하는 이범주 코치도 IT 발달이 교습가를 대체할 수는 없다는 의견이다. 그는 “기계를 통해 선수들의 스윙 데이터를 분석하고 내 스윙의 문제점을 파악하는 것이 용이해진 것은 맞다”면서도 “반대로 데이터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지 지식이 없으면 잘못 사용해서 독이 될 수도 있다. 또 너무 데이터만 맹신하면 내 스윙을 하지 못하고 더 나은 데이터 수치를 만들기 위해 부자연스러운 스윙을 하게 된다. 그러면 스윙이 망가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데이터는 단지 참고용으로만 사용하고 오롯이 내 스윙을 반복적인 연습을 통해서 완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조 원장도 이 코치와 비슷한 의견이었다. 조 원장은 “데이터가 선수 지도를 하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지만 그것으로 판단할 수 없는 분명한 교습가들만의 감이 있다고 본다. 또한 잘하고 있는 선수에게 데이터가 나빠졌다며 스윙 폼 수정 등을 요구하다가는 오히려 선수를 망칠 수도 있다”고 경계했다. 이어 “데이터를 기반으로 이를 선수에게 좋은 방향으로 적용 시킬 수 있도록 교습가들이 더 많이 공부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IT가 골프 대중화를 촉진시켜 교습가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줄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이 원장은 “AI 코칭 등을 통해 아마추어 골퍼들이 골프를 더 잘할 수 있게 되면 골프 붐으로 이어질 수 있을 거고, 그러면 그건 전반적으로 골프 시장이 살아나는 효과로 연결될 수도 있다고 본다. 그 과정에서 레슨의 중요성은 더 부각될 것이고 거기서 교습가들도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서울경제 골프먼슬리]


이종호 기자·정문영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