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된 DN그룹이 계열사 간 합병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소액주주들이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이사 충실 의무 대상에 주주를 포함하는 상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정부와 재계가 갈등을 빚는 상황에서 이 같은 사례가 잇따를수록 논란이 더욱 가열될 것으로 내다봤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자동차용 고무 제품 업체 동아타이어(282690)는 다음 달 11일 서울 여의도에서 개인과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기업 설명회를 개최한다. 12일 DN오토모티브(007340)가 계열사인 동아타이어를 흡수합병한다고 공시한 후 관련한 사안을 설명하는 자리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현재 DN오토모티브는 동아타이어의 지분 12.66%를 보유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동아타이어 소액주주들의 불만은 주로 이사회의 일방적인 합병 결정과 1대0.1558169라는 합병 비율에 집중됐다. 이들은 주당 2만 원 수준의 특별 배당 등 보상 대책을 회사에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동아타이어 소액주주는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부채도 없고 현금도 많은 회사인데 하루아침에 반값도 안 되는 가치를 받고 주식을 빼앗기게 됐다”고 억울해했다. 동아타이어 관계자는 “기업 설명회에서 합병 사안을 소액주주들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할 예정”이라고 했다.
자동차 부품사인 DN오토모티브는 2022년 DN솔루션즈(옛 두산공작기계)를 인수한 뒤 지난해 지주사로 전환했다. 지주사는 상장사 지분 30% 이상을 보유해야 한다는 공정거래법에 따라 DN오토모티브는 동아타이어 지분 17.34%를 추가로 확보해야 했다.
문제는 DN오토모티브 이사회가 추가 지분을 확보하는 대신 계열사 흡수합병을 의결하면서 불거졌다. 두 회사가 2017년 인적 분할로 나뉜 지 불과 7년 만에 다시 합병 결정을 내린 셈이다. 회사 측은 기준시가를 기준으로 합병 가액을 DN오토모티브 8만 583원, 동아타이어 1만 2556원으로 산정했다. 자본시장법에 따라 최근 1개월과 1주일 평균 종가에 최근 종가를 산술평균해 정한 수치다. 이에 따라 동아타이어 주주는 1주당 DN오토모티브 0.1558169주를 받게 됐다.
동아타이어 소액주주들은 동아타이어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이 0.45배로 DN오토모티브의 PBR(0.55배)보다 더 낮다는 점에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동아타이어가 DN오토모티브보다 매출이나 시가총액 등은 작지만 현금성 자산이 많고 영업이익도 꾸준히 내는 기업인데도 지나치게 평가절하해서 가치를 산정했다는 지적이다.
소액주주들은 두 회사를 인적 분할했다가 다시 합치는 과정에서 최대주주의 지배력만 강화된다고도 주장했다. 실제로 그간 증여·유증 등으로 지분을 늘린 김상헌 DN그룹 회장은 합병 이후 DN오토모티브 지분 보유율이 30.30%에서 32.25%로 1.95%포인트 더 늘어난다. 친인척 등이 보유한 주식까지 합칠 경우 지분율은 50.89%에서 51.13%로 0.24%포인트 상승한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주당 순이익 등 DN오토모티브의 일부 지표가 동아타이어보다 더 좋은 데다 성장성도 높기에 주가 산정 과정은 정당했다는 반론도 나오고 있다. 회사 측도 상법과 자본시장법 등 관련 법이 정한 절차를 준수해 합병 작업을 진행하는 만큼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허위 자료를 기반으로 계산했거나 현저히 불공정하게 합병 가액을 정했을 때만 합병 결정을 무효로 돌릴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도 사측의 입장을 지지하는 주요 근거다.
동아타이어 측은 “합병 이후 최대주주 지분율이 32.25%로 높아지는 건 보유 중인 동아타이어 지분율이 DN오토모티브 지분율보다 높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학계와 법조계에서는 DN그룹과 같은 사례가 이어질수록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을 둘러싼 논란도 계속 커질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논란이 되는 상법 개정의 핵심은 합병 등으로 지배주주와 소액주주 간 이해 상충이 발생했을 때 이사가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고려하도록 하는 의무를 부여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현행 상법에서는 회사가 합병을 추진하면서 소액주주의 재산권을 침해하더라도 개인투자자가 구제받을 방법은 마땅치 않다.
천준범 와이즈포레스트 대표(변호사)는 “상장사는 기업가치 측정 기준이 시가(市價) 말고는 없어 주가가 저평가된 상태에서 합병 비율을 정해도 책임을 완전히 면한다”며 “상법 개정 때 합병 결정 과정에 공정 가치 기준 등을 추가하면 회사도 더 고민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정부, 정치권과 재계는 상법 개정을 통한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 확대 방안을 둘러싸고 크게 충돌하고 있다. 경영인 단체 등은 소송 남발 가능성, 경영 불확실성 고조 등을 이유로 반대하는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22대 국회 출범과 동시에 관련 법안을 연달아 발의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상법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재계 반발을 감안해 배임죄 폐지·축소 카드를 제시했다. 이 원장은 26일 상장사 등이 참여하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 관련 세미나에 참석해 관련 입장을 재차 밝힐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