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우리와 닮은 아일랜드에 스며들다

■김용길 주아일랜드대사

식민생활·분단국가의 아픈 역사

개방경제체제·성장 과정도 비슷

서민 고달픔 달래려 펍문화 발달

아일랜드인의 삶 가깝게 느껴져





한국에서 서쪽으로 지구 반 바퀴, 대서양과 맞닿아 있는 작은 섬나라. 바로 아일랜드다. 아일랜드 고유어인 게일어로는 ‘Éire’라 표기해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에이레’라고 부르기도 했다. 대개 세계적인 흑맥주 ‘기네스’의 본고장, 노벨문학상을 많이 배출한 나라, 버스킹의 나라 정도를 떠올리지만 1년 전 대사로 부임해서 보니 유럽 북서부의 이 조그마한 섬나라가 우리나라와 닮은 점이 의외로 많다. 희한하게 우리나라 지도와도 비슷하게 생겼다.



아일랜드는 예부터 바이킹족·앵글로노르만족 등 외세의 침입을 많이 받았고 수 세기간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으며 모국어인 게일어를 잃을 뻔한 위기를 겪었다. 19세기 중반 갑자기 찾아온 대기근은 당시 800만 명 인구 중 300만 명을 아사(餓死)로 내몰거나 미국과 캐나다·유럽 각 지역으로 흩어지게 했다. 대기근으로 영국과의 관계는 악화되고 민족주의가 고무되면서 1921년 독립을 쟁취했지만 종교적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북아일랜드와 나뉜 채 고난의 시기를 보냈다. 분단의 이유가 우리와 다르고 1998년 체결된 ‘북아일랜드 평화협정’으로 양 진영을 가르던 물리적 국경선을 없애 우리가 처한 분단의 현실과는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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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체제나 성장 과정도 비슷한 점이 많다. 자원이 많지 않아 대외의존형 개방경제를 유지하고 있는 아일랜드는 유럽 최저소득 국가 중 하나였으나 1990년대 중반 이후 고도의 경제성장을 달성해 ‘켈틱 호랑이(Celtic Tiger)’로 도약했다. 2008년 부동산 버블 붕괴 등으로 경제위기를 겪고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았지만 정부의 강력한 구조 개혁 추진으로 구제금융을 일찍 졸업한 후 다시 급격한 성장세를 보였다. 현재 아일랜드는 애플·구글 등 주요 정보기술(IT) 기업의 유럽 본부와 거대 제약 회사를 비롯해 1000여 개 외국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고 있다. 이러한 성공에는 정부의 적극적인 유치 노력도 있었지만 유럽연합(EU) 시장으로의 접근성, 영어를 사용하는 젊고 숙련된 노동력, 낮은 법인세 등도 한몫을 했다.

한국과의 외교 관계는 1983년부터 시작됐으나 양국의 인연은 훨씬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성골롬반외방선교회·천주의성요한수도회 등은 1900년대 초 선교 활동을 하면서 빈민 구제, 사회개발 운동을 통해 국가 발전에 동참했고 한국전쟁 때는 아일랜드 젊은이들이 우리나라를 위해 희생하기도 했다. 얼마 전 대사관을 방문한 고령의 한 성골롬반 신부는 3형제가 모두 한국에서 신부로 재직했다며 1961년부터 50년간 지낸 한국 생활을 들려주었다. 한국 현대사의 산증인으로 한국인과 다름없는 삶을 살았고 지금의 대한민국을 매우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에 한국을 향한 애틋한 정이 느껴져 뭉클하면서도 감사했다.

아일랜드인들의 삶을 돌아보면 우리처럼 고단하고 아픔이 많았다. 서글픔을 달래려고 펍(pub) 문화가 발달한 건 아닌가 싶다. 아일랜드인들에게 펍은 삶과 문화가 녹아 있는 삶의 현장이다. 반면 목가적 풍경이 주는 ‘힐링’도 있다. 더블린에서 조금만 외곽으로 나가도 초원에서 양과 말·소 등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희소식은 이렇게 자연 방목으로 자란 아일랜드산 쇠고기를 이제 한국 식탁에서도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일랜드산 쇠고기는 유럽 내에서도 차별화된 맛과 색상으로 입지를 굳힌 지 오래다.

이곳은 날씨가 흐리고 비가 자주 온다. 하루에 사계절을 다 경험하는 날도 있다. 오늘도 어김없이 비가 내린다. 우리와 닮은꼴 아일랜드의 매력이 비처럼 조금씩 내 안에 스며들며 아일랜드가 더 가깝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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