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공학, 지질자원학을 전공하면서 자원순환의 한 분야인 ‘도시 광산(urban mining)’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버려진 제품에서 다시 자원을 추출하는 도시 광산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폐기물을 ‘선별’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지만 사람이 선별하면 실제 재활용률은 30%에 불과합니다.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사람을 대신할 수 있는 수준의 인공지능(AI) 로봇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에이트론을 개발하게 됐습니다.”
박태형(사진) 에이트테크 대표는 26일 서울경제신문 인터뷰에서 “폐기물 선별 작업은 근무 환경이 열악해서 기피하는 사람이 많아 로봇 솔루션으로 대체한다면 폐기물 산업 전체를 혁신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에이트테크는 박 대표가 재활용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20년 설립한 기후테크 스타트업이다. 주력 분야는 AI 로봇 솔루션으로 소프트웨어부터 하드웨어까지 모두 자체 개발한 폐기물 선별 로봇 에이트론을 제조·판매하고 있다. 내년 완공을 목표로 인천에 1652㎡ 규모 ‘무인로봇자원회수센터’도 건설 중이다. 이는 오직 로봇으로만 운영되는 폐기물 선별장으로 에이트론 28대 이상을 설치할 계획이다.
챗GPT 등장 이후 높아진 AI에 대한 관심과 높아지는 기후 위기에 따라 에이트론도 스케일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 86억 원 규모 시리즈A 투자를 받으며 누적 투자액 122억 원을 돌파했다. 현재 본격적인 시리즈B 단계에 들어가기 앞서 브릿지 라운드를 진행하고 있으며 올해 안으로 50억 원을 유치할 계획이다.
낯선 기술에 부정적 시선…“맨땅에 헤딩하며 설득”
캐나다에서 학창 시절 대부분을 보내고 취업까지 했던 박 대표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 한국 창업을 결심했다. 사업 아이템으로는 기존에도 관심이 많았던 자원순환 생태계를 선택했다. 그는 “사회에 도움이 되면서 동시에 경제적인 효과도 창출할 수 있는 분야가 무엇인지 고민했다”며 “어릴 때부터 환경에 관심이 많았고, 회사 성장에 따라 사람들의 일상 생활과 환경에 이바지한다는 자부심을 느끼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어 “버려진 제품에서 필요한 자원을 회수하는 도시 광산을 실현하기 위해 국내 폐기물 시장에 도전했다”고 덧붙였다.
그렇게 그는 AI와 로봇으로 폐기물을 선별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에이트테크를 창업했다. 하지만 환경·사회·지배구조(ESG)가 주목받고 있음에도 그의 사업은 크게 환영받지 못했다. 도시 광산이라는 개념이 아닌 AI, 로봇 등 정보기술(IT)에 대한 주변 이해도가 낮았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국내 폐기물 처리 시장 역사가 오래된 만큼 대부분 종사자들의 나이도 많은 편”이라며 “이미 사람이 폐기물을 선별하고 있는 데 이걸 AI, 로봇 등이 대체하겠다는 발상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AI를 학습시키기 위해서는 폐기물 선별장에서 얻은 데이터가 꼭 필요했다. 화상 판별 센서 카메라로 폐기물과 선별 작업을 촬영해야 이를 내부 개발자들이 AI를 학습시킬 수 있는 데이터로 가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박 대표는 폐기물 선별장 내부에 카메라를 설치하기 위해 사업주들을 직접 만나 설득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맨땅에 헤딩을 하는 것처럼 폐기물 처리 업체를 찾아가 ‘AI 로봇을 개발하려고 하는데 협조 좀 부탁한다’고 하니 대부분 거절했다”며 “그래도 몇몇 호의적인 분들이 젊은 친구가 사업을 하는 걸 기특하게 여겨 허락해준 덕분에 다행히 데이터 수집을 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환경 분야에 집중 위해 대기업 러브콜도 거절
폐기물에 대한 기초 데이터를 확보한 에이트테크는 2021년 AI 폐기물 선별 로봇 에이트론의 프로토타입을 개발했다. 이어 꾸준한 업그레이드를 통해 지난해 상용화에 성공했다. 에이트론에 적용된 AI는 실제로 500만 건 상당 데이터를 학습했기 때문에 99.3% 정확도로 1분당 96개 폐기물을 선별할 수 있다. 이러한 기술력을 눈여겨본 대기업의 러브콜도 이어졌다. 박 대표는 “AI를 활용한 분석·판독 분야는 범용성이 높기 때문에 이를 사업장에 적용하고 싶다는 대기업들 제안이 있었다”며 “가전 제품 생산 라인이나 택배 상자를 분류하는 현장에 에이트테크가 개발한 AI와 로봇을 투입하고 싶어했다”고 귀뜸했다.
하지만 박 대표는 ‘환경 보호’라는 창업 목표를 지키기 위해 이러한 제안을 거절했다. 그는 “스타트업이 한 번 샛길로 빠지면 돌아오기 쉽지 않고, 팀을 나눠 제조·유통 환경에 맞춰 AI를 따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여력도 없었다”며 “단순히 사업 확장과 수익 실현 만을 추구했다면 대기업 러브콜을 수락했을 것”이라거 전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환경과 사회에 이바지한다는 생각으로 유혹을 뿌리쳤다”며 “앞으로도 비슷한 제안이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환경을 위해 기후테크 산업에 머무르는 선택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정 내 분리수거 자동화 목표…해외 진출도 타진
에이트테크는 현재 인천에 사람이 없이 오직 로봇으로만 운영되는 폐기물 선별장을 조성하고 있다. 무인로봇자원회수센터를 통해 에이트테크는 단순 AI 로봇 제작 및 판매 업체를 넘어 자원순환 생태계의 직접적인 생산자로 도약한다는 목표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플랜트를 폐기물 솔루션으로 직접 공급하는 새로운 사업 모델도 구상 중이다. 이러한 솔루션을 기반으로 기피 업종으로 꼽히는 폐기물 처리 업계 인력난을 해결하고, 기존 30%에 불과했던 선별장 폐기물 재활용률을 70%까지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동시에 무인로봇자원회수센터의 개념을 확장해 가정에서 폐기물을 배출할 때부터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선별 솔루션도 개발 중이다. 올해 ‘재활용 쓰레기 자동 집하 및 선별 솔루션’(가칭)의 기술검증(PoC)를 진행한 후 내년에는 이를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도록 고도화한다는 계획이다. 박 대표는 “모든 가정에서 재활용 폐기물에 대한 분리수거를 하는데 이는 사실 매우 귀찮고 복잡한 일”이라며 “현재 개발 중인 솔루션이 완성되면 가정·공동주택·아파트 등의 분리수거를 자동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해외 진출 가능성도 열려 있다. 자원순환은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주목받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한국처럼 국토가 좁고, 높은 인구밀도를 가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지역을 중심으로 빠르면 내년에 수출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한다”며 “에이트론의 로봇 솔루션으로 국내외 자원순환 생태계를 혁신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