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엔달러 환율이 달러당 160엔을 넘어서는 등 엔화 가치가 1986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자 국내 투자자들도 15개월 만에 일본 주식을 팔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외국인투자가 이탈, 미일 금리 불확실성 등을 이유로 당분간 일본 증시에 대한 국내 투자자들의 심리 위축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28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이달 들어 지난 27일까지 국내 개인투자자들은 일본 주식을 2081만 8753달러(약 289억 원)어치 순매도했다. 국내 투자자들이 일본 증시에 매도 우위를 보인 것은 지난해 3월 548만 8700달러어치를 순매도한 이후 처음이다. 순매도 금액 기준으로는 2022년 12월(2689만 4902달러) 이후 18개월 만에 가장 많은 수준이다.
국내 투자자들은 이 기간 ‘아이셰어즈 20년 이상 미국채 엔화 헤지 상장지수펀드(ETF)’ 4591만 2374달러(약 637억 원)어치를 팔아치워 압도적인 매도량을 기록했다. 이는 국내 투자자들이 일본 주식 가운데 두 번째로 많이 내다판 넥슨의 1369만 3979달러(약 190억 원)와 비교해 3배 이상에 달하는 수치다. 아이셰어즈 20년 이상 미국채 엔화 헤지 ETF는 엔화로 중장기 미국채에 투자하는 상품이다. 이 ETF는 미국의 금리 인하와 일본의 금리 인상에 베팅하면서 원화 대비 엔화 가치가 상승하면 환차익까지 얻을 수 있다.
이 ETF는 이달 국내 투자자의 일본 주식 순매수 상위 50개 종목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국내 투자자는 올 들어 5월까지 이 ETF를 일본 주식 가운데 가장 많은 4억 781만 5199달러(약 5636억 원)어치나 순매수한 바 있다.
국내 투자자들이 이달 일본 주식을 팔고 나선 것은 최근 엔화 가치가 추락하면서 일본 경제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졌다고 판단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 국내 투자자들은 올 1~4월까지만 해도 매달 1억 달러가 넘는 일본 주식을 순매수했다. 2월에는 환율이 달러당 150엔을 재돌파했으나 국내 투자자들은 같은 달 일본 주식을 1억 465만 8928달러(약 1445억 원)어치 사들였고 3월에는 1억 6344만 1095달러(약 2257억 원)로 순매수 규모를 더 키웠다.
당시에는 조만간 미국이 금리를 인하하고 일본은 인상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시세 차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일본 니케이지수도 연초부터 강세를 보이면서 3월 사상 최초로 4만 포인트를 돌파했다.
그러다 미국 금리 인상과 일본 금리 인하가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니케이지수는 다시 3만 포인트대로 회귀했고 투자자들의 불안 심리도 확산했다. 엔화 가치는 끝도 없이 떨어지는데 지난달 내놓은 일본 기업들의 연간 실적 전망까지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자 외국인들은 이달 21일까지 5주 연속 순매도를 이어갔다. 이는 지난해 3월 이후 최장 기록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투자자의 일본에 대한 투자 심리가 회복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봤다. 김찬희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일본 내수 경기 부진으로 추가 긴축에 대한 의구심이 부상했고 역대 최대급 투기적 순매도가 더해지면서 변동성도 커졌다”며 “상품수지 적자가 유의미하게 개선되기는 어려운 만큼 결국 미국과 일본의 통화정책 향방이 중요하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