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명의 사망자와 6명의 부상자를 낳은 ‘시청역 교통사고’의 원인이 아직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가해 운전자의 나이가 68세로 알려지면서 고령에 따른 운전 부주의가 사고 원인이 아니냐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현재 고령 운전자를 대상으로 시행되고 있는 면허 자진 반납 제도 등은 참여율이 2%대로 저조하다는 점에서 ‘조건부 면허’ 등 보다 강제력이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2일 경찰에 따르면 전날 사고 가해자가 몰았던 검은색 제네시스 G80 차량은 이날 오전 가림막이 씌워진 상태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옮겨졌다. 경찰은 국과수 감식을 통해 차량의 급발진 여부를 확인하고 사고기록장치(EDR) 분석을 위해 자동차 제조사에도 협력을 요청할 계획이다.
국과수의 차량 EDR 분석에는 통상 한두 달이 소요되는 만큼 그 전까지는 사고의 원인을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이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현재 가해 운전자 A 씨의 동승자 등 사고를 낸 측에서는 사고 원인이 급발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사고 현장 목격자들은 횡단보도 앞에서 차량이 멈췄다는 점 등을 들어 급발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입을 모은다. CCTV 영상을 봐도 사고 차량이 속도를 서서히 줄이면서 정지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염건웅 유원대 경찰소방행정학부 교수는 “급발진이 되면 급가속이 이뤄지는데 그렇다면 구조물을 추돌하지 않는 이상 멈추지 않는다”며 “차량이 마지막에 제동을 하고 정지했다는 부분 때문에 급발진 가능성이 적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사고 원인이 급발진이 아닌 운전자 부주의일 경우 고령 운전자로 인한 대형 사고 방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65세 이상 운전자가 가해자인 교통사고는 지난해 3만 9614건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현재 정부는 75세 이상 운전자에게 3년마다 운전면허를 갱신하도록 하고 65세 이상 운전자가 면허를 자진 반납할 시 지방자치단체별로 10만~30만 원 상당의 현금을 지원하는 등의 정책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자진 반납률이 2%대에 그쳐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많다.
이에 정부가 올해 5월 내놓은 ‘조건부 면허제’를 고령 운전자에게 적용하는 방안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당시 정부는 운전 능력이 저하된 고령자 등 고위험군 운전자를 대상으로 야간 운전 금지, 고속도로 운전 금지, 속도제한 등의 조건을 걸어 면허를 허용하는 조건부 면허제를 검토하는 방안을 내놓았으나 거센 반발에 직면하자 나이 기준은 적용하지 않겠다며 한발 물러선 바 있다.
이날 희생자 빈소를 찾은 오세훈 서울시장도 “사고 원인이 어떻게 밝혀질지 아직은 모르겠다”면서도 “이번 사고를 계기로 해서 고령자·초고령자 운전면허 갱신에 있어 어떤 보완 장치가 필요한지 사회적인 논의가 시작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달 1일 오후 9시 26분 제네시스 차량이 시청역 인근 웨스틴조선호텔 지하 주차장에서 빠져나온 후 일방통행 4차선 도로를 역주행하다 왼편 인도로 돌진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보행자 9명이 사망하고 6명이 부상을 입었다. 6명은 현장에서 사망했으며 3명은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이송됐다가 같은 날 밤 11시 20분께 사망 판정을 받았다. 부상자는 가해 운전자 A 씨와 동승한 아내, 보행자 2명, A 씨 차량이 들이받은 BMW·쏘나타 운전자 2명이다. 경찰은 A 씨를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수사하고 있으며 구속영장 신청 여부도 검토해보겠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