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2월 진행된 서울 강남구의 한 아파트 단지 무순위 청약에 100만 명이 넘는 신청자가 몰려들었다. 전체 3가구 모집에 101만 명이 청약을 신청해 평균 경쟁률이 33만 7818대1에 달했다. 이들 물량은 조합이 소송 등의 사태에 대비해 분양하지 않고 남겨둔 보류지 물건으로 4년 전 분양 가격 그대로 청약받아 당첨과 동시에 20억 원이 넘는 시세 차익이 가능했다. 더욱이 4년 전 분양 가격도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됐던 만큼 시세보다 턱없이 낮은 분양 가격이 청약 광풍을 몰고 온 것이다.
택지비와 건축비를 합산해 분양가를 책정하는 상한제는 과거 좌파 정부가 주택 가격 상승기 때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른 규제다. 상한제는 1977년 아파트 분양 가격을 통제하기 위해 분양 상한 가격을 정한 것에서 시작됐다. 경직된 분양가에 공급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얼마 가지 않아 민간 주택에 대한 상한제는 결국 폐지됐다. 하지만 참여정부는 2005년 아파트 가격 폭등의 원인으로 고삐 풀린 분양가를 지목하고 공공택지 내 전용 85㎡ 이하 아파트에 상한제를 다시 적용한 뒤 민간택지 분양 물량에도 확대 적용했다. 현재 시행 중인 재건축 등 민간택지에 대한 분양가 상한제는 문재인 정부가 2020년 7월 도입한 것이다. 현 정부는 지난해 집값이 하락하자 상한제를 해제했지만 강남 3구와 용산구는 그대로 규제 지역으로 묶어놓았다.
상한제를 적용받는 무순위 청약 단지에 대한 청약 열기가 과열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상한제의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3.3㎡당 6737만 원에 일반 분양하는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래미안 원펜타스와 3.3㎡당 6480만 원 전후로 분양가가 책정될 것으로 예상되는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래미안 레벤투스의 청약 열기도 뜨거울 것으로 전망된다. 이들 단지 모두 상한제가 적용된 만큼 주변 시세보다 저렴해 당첨자들은 안정적인 시세 차익을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 고분양가를 막기 위해 도입된 상한제가 투기를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아이러니한 것은 상한제에서 해제된 지역의 고삐 풀린 분양가격이 되레 주변 시세를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이다. 청약 접수를 시작한 ‘마포 자이 힐스테이트 라첼스’의 분양가는 3.3㎡당 5150만 원으로 강북 지역 정비사업에서 나온 아파트 가격으로는 최고치다. 국민주택형(전용 84㎡)의 분양가가 17억 4500만 원을 넘는다. 인근 아파트 시세보다 최대 3억~4억 원가량 높을 정도다. 재건축 선도 지구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경기도 분당의 한 아파트 단지는 건설사와 자체 사업성 분석 결과를 도출하면서 일반 분양가로 3.3㎡당 5000만 원을 책정했다고 한다. 강남 3구의 분양 가격이 규제에 묶인 사이 마포 재개발 사업의 일반 분양 물량 가격이 3.3㎡당 5000만 원을 넘어서고 분당 등 1기 신도시에서도 2~3년 후 3.3㎡당 5000만 원에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일부 지역에 국한한 상한제가 코브라의 역설에 빠졌다는 비판도 나온다. 코브라의 역설은 인도에서 코브라를 잡기 위해 포상금 지급 정책을 펴자 돈을 노린 코브라 사육이 늘어나고 이에 정부가 포상금을 중단하니 농민들이 코브라를 길거리에 풀어 더 큰 피해를 주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이 오히려 사태를 더 악화시키거나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하는 코브라의 역설이 ‘줍줍’ 광풍을 초래하는 분양가 상한제와 유사하다는 지적이다.
상한제를 확대하면 서울 지역의 정비사업은 수익성 악화라는 암초에 지연될 수밖에 없다. 공급 확대를 위한 1기 신도시 재건축 정책도 표류할 것이 뻔하다. 그렇다면 정부는 집값 억제라는 정책 목표를 상실한 채 아파트 청약 시장을 투기판으로 만들어버린 상한제를 폐지해야 할 것이다. 강남 3구와 용산에 집을 소유한 사람이 전체 국민의 극소수에 불과한 상황에서 규제를 풀어주면 국민 정서를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해제에 머뭇거리는 것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국민 정서 때문에 철 지난 규제를 고집한다면 일부 지역의 청약 시장 광풍 현상만을 부추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