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대치로 치솟은 임금 체불에서 볼 수 있듯이 최저임금은 사업주의 경영과 근로자의 생계에 직결된다. 하지만 내년도 최저임금을 정할 올해 최저임금위원회 심의는 최악의 노사 갈등으로 얼룩지고 있다. 임금 수준을 양보하지 않는 노사를 마주 앉혀 매년 최저임금을 정하는 현 심의 방식을 바꾸자는 요구가 결국 최임위 안에서 터져나왔다.
최임위가 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연 제8차 전원회의는 경영계 측인 사용자위원 전원 불참 속 ‘반쪽 회의’로 마쳤다. 최저임금위는 근로자·사용자·공익위원 9명씩 27명으로 구성되는 회의체다.
사용자위원 불참은 2일 열린 직전 회의에서 노동계 측인 일부 근로자위원이 업종 구분 표결에 물리력을 행사하면서 방해한 게 발단이다. 근로자위원들이 투표용지를 찢고 위원장 의사봉을 뺏은 데 대한 항의 차원으로 사용자위원 전원이 회의장을 떠난 것이다. 권순원 공익위원은 이날 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이번 사태는 최저임금 제도 근간을 흔들고 제도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유사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근본적인 제도 개선을 모색해 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 최임위 운영을 주도하는 공익위원이 심의 기간 제도 개선을 공개적으로 요구하는 건 이례적이다.
우려는 이 같은 최임위 심의 파행이 매년 반복되더니 올해 최악의 상황이 됐다는 점이다. 예년보다 늦은 5월 1일 1차 전원회의를 연 최임위는 지난달 25일 열린 5차 전원회의에서 업종 구분 논의를 시작했다. 심의 법정 기한인 27일을 이틀 앞두고 열린 늑장 회의다. 이는 심의 내내 도급 근로자 최저임금 적용, 업종 구분 적용을 두고 노사가 합의점을 찾지 못한 결과다. 결국 최임위는 이날 8차 회의에서도 수준 심의 절차 시작인 노사 최초 요구안을 제출받지 못했다. 이 심의 속도라면 최임위는 지난해 역대 최장 심의 기록(110일)을 넘길 가능성이 높다. 최임위가 늘 비효율적이고 심한 갈등 양상을 보여주는 심의 제도 탓이다. 우선 고율 인상을 원하는 근로자위원과 저율 인상을 원하는 사용자위원의 대립이 쌓여간다. 최근 5년간 근로자위원의 최초 요구안 범위는 16.4~26.9%다. 반면 사용자위원은 -4.2~0%로 양측이 격차가 너무 큰 상황이다. 실제 결정된 최저임금 수준을 볼 때 근로자의 최초 요구안이 과한 측면이 있다. 5년간 최종 결정된 최저임금은 1.5~5.05%로 근로자위원 최초 요구안보다 사용자위원 최초 요구안에 훨씬 더 가깝다. 노사의 최초 요구안 인상률 차이는 2011년부터 올해까지 14년 동안 20% 선 아래로 내려간 경우는 단 두 번에 불과했다.
노동계가 매년 이뤄지는 최저임금 심의를 조직 운영 동력으로 삼은 점도 노사 합의를 막는 요인이 될 수 있다. 합의보다 원하는 수준으로 임금을 올리려는 ‘투쟁’을 하고 있다는 평가다. 근로자위원을 양분한 한국노동조합총연맹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이날 최임위 회의가 열린 세종청사 앞에서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요구하기 위한 결의대회를 열었다. 양대 노총 위원장은 1500여 명이 모인 집회에서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위해 투쟁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런 흐름은 노동계의 공익위원 불신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공익위원이 누구의 손을 들어주느냐가 최임위 심의의 향방을 가르기 때문이다. 이번 표결 방해도 공익위원 불신으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노사 대립을 완화하기 위해 위원 수를 줄이고 전문화와 상설화가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지난해 노사공포럼은 박준성 9대 최임위 위원장과 어수봉 10대 최임위 위원장에게 대담 형식으로 최저임금 제도 개편 방향을 물었다. 공통된 조언은 최임위의 위원 축소와 별도 심의기구 신설이다. 단일 위원회 체제가 노사 갈등을 부추기고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다. 올해도 무산된 최저임금 업종 구분을 두고 정보 부족이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업종 구분을 하려면 업종 내 근로자와 최저임금 영향도가 명확해야 한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명확한 정부 통계가 없는 상황에서 업종 구분의 필요성, 해당 업종 임금 수준 등을 최임위 안에서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