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1월 예정된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할 경우 한국 증시가 큰 하락세를 맞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또다시 자국 이익 우선주의를 주요 정책으로 들고나오면 국내 기업의 수출 길이 막힐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한마디로 미국 증시와 국내 증시 간 디커플링에 대비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9일 김상훈 KB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이 국내 증시에는 악재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2017년 취임한 트럼프 1기 행정부의 전례를 분석하며 이같이 밝혔다. 2018년 당시 미중 무역 갈등이 심화하면서 중국과 한국의 증시도 크게 부진했는데 이것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진단이다. 김 센터장은 “1990년대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 세계화의 흐름에서 수출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우리나라 경제가 수혜를 봤는데 트럼프 정부의 탈세계화로 이 흐름이 크게 꺾였다”고 강조했다.
김 센터장은 이에 따라 ‘삼천피’ 전망도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봤다. 앞서 KB증권을 비롯해 NH투자증권·신한투자증권 등 국내 주요 증권사들은 올 하반기부터 내년 코스피 등락 범위를 최고 3000 이상으로 제시한 바 있다. 김 센터장은 “이 모든 시나리오는 현행 조 바이든 정부가 이어진다는 전제하에 만들어졌다”며 “구체적인 방향성과 수치는 8월에 나올 민주·공화당의 공약집을 확인해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정부 아래에서의 자본시장 특징을 한마디로 ‘변동성’으로 요약했다. 트럼프 정부가 자국 우선주의를 위해 관세와 감세 카드를 꺼내 들면서 그 부작용으로 대규모 재정지출을 수반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김 센터장은 “트럼프 정부 때 대규모 경기 부양책과 법인세 감세를 위해 국채가 무한정으로 발행됐다”며 “자연스레 채권 가격이 떨어졌고(금리 인상) 연방준비제도(Fed·연준)도 경기 과열을 막기 위해 금리를 올렸다”고 말했다. 그는 “그럼에도 뉴욕증시가 하락하자 트럼프는 재닛 옐런 당시 연준 의장을 단임시키고 제롬 파월 의장의 해임까지 시사해 연준의 독립성 논란을 불러일으켰다”며 “미국의 금리가 상고하저 패턴을 보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센터장은 변동성 장세에서도 뉴욕증시는 잘나갈 것으로 봤다. 자국 우선주의로 미국의 실물 경기가 호조를 띨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에 근거한 것이다. 그는 “달러화도 (트럼프 집권 시 단기적으로 약달러를 유인하겠지만) 장기적으로 강세를 보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 지난달 28일 치러진 미 대선 토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우세를 보이자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와 10년물 미국채 금리, 달러인덱스 지표 모두 급등한 바 있다.
김 센터장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혹은 그전 때와 비교하면 시장에서 대선에 관심을 갖는 게 상당히 이른 감이 있는데 역설적으로 그만큼 트럼프 정부가 글로벌 증시에서 큰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이어 “금리 인상이든, 달러 강세든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할 때마다 실물 경기와 관계없는 통화·재정 정책이 등장했다”고 덧붙였다.
특히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중요 변수가 될 것으로 꼽았다. 김 센터장은 “트럼프 행정부 1기 때는 물가 상승률이 지금처럼 이슈가 되지 않았다”며 “(하지만 트럼프 집권 시 이번에는) 관세장벽이 시민의 생활물가를 상승시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도 정치적인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