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금리 인하 기대가 수도권 부동산에 영향을 주고 있다며 이 같은 요인들을 고려해 기준금리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9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정부의 일관성 없는 가계대출 정책에 한은의 금리 결정이 어려워지고 있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설명했다. 이 총재는 “최근 금리 인하 기대감이 커지면서 시장의 이자율이 낮아지고 있고 수도권 중심으로 부동산 가격은 올라가고 있다”며 “이를 금융안정 측면에서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은이 이날 기재위에 제출한 자료에서도 향후 가계대출의 상방 압력이 높아졌다는 구체적인 분석이 나왔다. 한은은 “주택 매매거래가 5만 가구 내외에서 점차 늘어나고 있어 시차를 두고 주택담보대출 수요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며 “서울의 경우 아파트 실거래 가격 상승 폭(3월 0.17%→4월 0.62%→5월 0.76%)이 커지고 거래량도 늘어나는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최근 은행 주담대 금리가 3% 후반까지 낮아졌으며 최근 장기금리 하락의 영향으로 추가 하락 압력이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고도 했다.
이 총재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리스크와 관련해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의 고금리 장기화 가능성, 주요국의 정치적 불확실성 증대 등으로 외환시장의 변동성이 높아진 상황”이라며 한국 금융 시장의 불안 요소에 대해 짚었다.
그는 11일로 예정된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회의를 언급하면서 “디스인플레이션 흐름과 성장·금융안정 간의 상충 관계를 충분히 고려하면서 결정할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이때 기준금리를 현 수준으로 유지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는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말을 아꼈다. 최근 정부·여당에서 금리 인하 압박이 심화한 것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을 듣되 금통위원들과 독립적으로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신 이 총재는 각종 정책안에 대해 소신을 밝혔다. 이 총재는 돌봄 도우미의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는 것에 법 위반 여지가 있다는 지적에 “그렇지 않다”며 “사적 계약을 하거나 (업종별) 최저임금을 차등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야당이 추진하고 있는 '전국민 25만원' 민생회복 지원금과 관련한 질문에는 "수출은 호조를 보이지만 취약계층은 어려운 상황"이라며 "재정지원을 하게 된다면 전략적으로 타깃(대상)을 정해 진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물가 안정을 위한 농산물 수입에 대해 재차 강조하며 “수입하면 물가 관리에 도움이 되고, 소비자 이해에 기반해 정책을 할 때가 됐다”고 했다.
이날 야당 의원들은 정부의 한은 일시차입금 규모가 역대 최대 규모라고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이 총재는 “일시 차입금 평균 잔액이 재정증권 평균 잔액을 웃돌지 않고, 재정증권 만기인 63일 이전에 환수될 수 있도록 정부 측과 사전 협의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한편, 금통위원들의 신상에 대한 얘기도 나왔다. 최기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금통위원 평균 재산이 54억 원으로, 평소에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부동산·금융·증권 투자를 많이 하고 관심도 많았다는 뜻"이라며 "이분들이 국민 다수의 이익을 위해 통화정책을 결정할까 의문이 드는 게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법원의 재판, 판결문도 다 공개되고 국회도 생중계된다"며 "하지만 왜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록은 마음대로 (실명을) 공개하지 않느냐"고도 물었다. 같은 당 정일영 의원 역시 금통위 회의록에서 개별 위원의 의견을 실명으로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이 총재는 "저는 재산이 많다고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재산을 부정적으로, 불법적으로 축적한 것이 아니면 그것이 비난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금통위원 실명 공개에 대해선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실명 공개의 장단점이 있다"며 "실명을 밝히면 자유롭게 의사를 발언하지 못할 위험이 있어 전통적으로 다른 나라에서도 의결 사항은 익명으로 처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