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노동시장의 냉각 추세를 강조하며 고금리가 자칫 불필요한 경제 둔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연준 내 금리 인하 논의가 본격화할 시점이 머지않았음을 시사한 발언으로 읽힌다.
파월 의장은 9일(현지 시간) 미국 상원 은행·주택·도시문제위원회에서 열린 반기 통화정책 보고에서 “고용시장 여건은 2년 전보다 확연히 진정됐다”며 “증가하는 인플레이션만이 우리가 당면한 유일한 리스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제 연준이 금리 인하를 결정하기 위해 인플레이션뿐만 아니라 고용시장 둔화 추세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는 의미다. 그는 “노동시장은 여러 측면에서 상당히 냉각됐다”며 “지금은 (노동시장이) 인플레이션 압력의 원천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금리 인하 시점을 특정하지는 않았다. 파월 의장은 “좋은 지표가 더 나오면 인플레이션이 지속적으로 2%로 가고 있다는 확신이 커질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다만 그는 “통화정책의 강도를 너무 늦게, 조금 낮춘다면 경제활동과 고용시장이 지나치게 약화될 수 있다”며 여지를 남겼다.
월가와 주요 외신은 그동안 물가에 무게중심을 두던 파월 의장이 고용시장에도 초점을 맞춘 점에 주목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금리 인하에 더 가까워지는 미묘하지만 중대한 변화”라며 “이제 시장은 연준이 이달 말 회의에서 9월 금리 인하에 대한 더 강한 힌트를 줄지 주목하고 있다”고 전했다.
파월 의장의 이날 발언은 지난 주 6월 고용 보고서에서 미국 실업률이 4.1%로 상승한 후 나왔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6월 실업률은 전월 수준(4.0%)을 유지할 것이라는 시장의 전망을 웃돌았다. 실업률은 지난해 4월 3.4%까지 떨어진 뒤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다.
6월을 기점으로 미국의 실업률은 경기 침체 판단 도구 중 하나인 ‘삼의 법칙(Sahm’s rule)’이 규정하는 침체 기준에 가까워졌다. 삼의 법칙은 연준의 전 이코노미스트인 클로디아 삼이 실업률과 침체의 상관관계를 이용해 고안한 침체 판단 이론으로, 최근 3개월 실업률의 이동평균치가 지난 12개월 내 3개월 평균 최저 실업률보다 0.5%포인트 더 오르면 침체로 볼 수 있다는 내용이다. 1950년 이후 열한 번의 침체 중 열 차례가 삼의 법칙에 들어맞는다. 세인트루이스연방준비은행에 따르면 6월 현재 삼의 법칙 침체 지표는 0.43%포인트로 기준선(0.5%포인트)을 목전에 두고 있다. 삼컨설팅의 대표인 클로디아 삼은 워싱턴포스트(WP) 칼럼니스트와의 대화에서 “미국 경제는 노란색 경고등의 영역에 들어섰다”며 “침체에 빠졌다는 게 명백해졌을 때는 연준이 정책 도구를 쓰기에 너무 늦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