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대기업들이 미래 사업 강화를 위한 사업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첫 발은 두산(000150)그룹이 내디뎠다. 적자인 두산로보틱스(454910)를 키우기 위해 매년 조 단위의 현금을 창출하는 두산밥캣(241560)을 100% 자회사로 만드는 분할 합병을 결정했다. 하지만 두 기업의 가치를 5조 원으로 똑같이 산정하면서 주주들의 불만이 거세지고 있다. 소액주주들의 반대에 부딪힐 경우 합병이 무산될 가능성도 있다. 다음 주에 닮은꼴 합병에 나서는 SK(034730)그룹을 비롯해 사업 재편을 진행하는 대기업들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12일 재계 및 증권가에 따르면 두산의 사업 재편이 성공하려면 두산에너빌리티(034020)와 두산밥캣 주주의 동의가 관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두산이 전날 발표한 방안에 따르면 두산에너빌리티는 두산밥캣을 인적 분할한 뒤 두산로보틱스의 완전 자회사로 편입시킬 예정이다. 두산에너빌리티 주주는 분할에 따른 일부 에너빌리티 지분 감소와 함께 두산로보틱스 신주를 배정받고 상장폐지되는 두산밥캣 주주들은 밥캣 1주당 두산로보틱스 주식 0.63주를 교환받는다.
문제는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밥캣 주주들의 반발이다. 분할 합병 비율에 만족하지 못한 주주들이 대규모로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면 두산그룹의 사업 구조 개편은 무효가 될 수 있다. 두산밥캣 주주들이 1조 5000억 원, 두산에너빌리티 주주들이 6000억 원을 초과 청구하면 이사회를 통해 변경 또는 계약 해제가 가능하다.
정동익 KB증권 연구원은 “두산그룹의 이번 계획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매수청구권이 과도하게 행사되지 않아야 한다”며 “두산에너빌리티 주주 입장에서는 연결 손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핵심 자회사가 분할돼 나가는 것이고, 두산밥캣 주주는 신사업보다는 안정적인 실적에 이끌린 투자자가 많은 만큼 모두 이번 분할 합병에 동의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두산밥캣은 지난해 매출 9조 7590억 원, 영업이익 1조 3899억 원을 기록하는 등 그룹의 최대 캐시카우인 반면 두산로보틱스는 영업손실 192억 원을 기록하며 부진을 이어가고 있다. 둘 다 시총 5조 원으로 평가받지만 실제 사업 전망과 이익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도 이날 “자본시장법이 상장회사의 합병에서는 예외 없이 기업가치를 시가로 정하도록 강제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며 “두산밥캣 주주들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흐름은 사업 재편을 추진 중인 SK그룹 입장에서도 주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SK그룹은 17일 이사회를 열고 SK온의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096770)과 SK E&S의 합병을 결의할 예정이다. 두산그룹과 달리 SK는 더 복잡해질 수 있다. SK E&S는 비상장사라 기업 평가를 어떻게 할 것인지 선택지가 다양하다. SK이노베이션의 주가가 낮게 형성돼 있어 주주들 입장에서는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시장에서는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 비율이 1대2 수준으로 정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한영수 삼성증권 팀장은 “투자자들은 복합기업보다는 순수 영업회사를 선호한다”며 “합리적인 기업가치 산정으로 주주들을 설득해야 사업 재편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