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킹스 스피치





국왕의 마차가 버킹엄궁에서 출발하기 전에 의사당 건물인 웨스트민스터궁에서 붉은 제복의 근위대는 의례적인 지하실 수색을 실시한다. 버킹엄궁에는 하원의원 한 명이 국왕의 안전한 복귀를 보장하기 위한 ‘인질’로 잡혀 있다. 의사당에 도착한 국왕은 5m 넘는 군주의 망토와 2868개의 다이아몬드 등이 박힌 제국 왕관을 착용하고 상원의원들이 기다리는 대회의실의 왕좌로 향한다. 국왕의 명에 따라 하원의원들이 소집되면 왕은 정부의 의제와 우선적으로 추진할 입법정책을 읽는다. 영국 의회 개원을 알리는 ‘왕좌 연설(the Speech from the Throne)’ 일명 ‘킹스 스피치(King’s speech)’이다. 이 같은 전통은 1603년 제임스 1세 때부터 시작됐다. 국왕이 연설하는 형식이지만 연설문은 정부가 작성한다.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국왕은 10분가량 연설문을 중립적으로 읽어내려갈 뿐이다. 국왕의 입을 통해 정부의 국정 운영 방향을 제시하는 셈이다.



찰스 3세 영국 국왕이 이달 17일 “경제성장이 정부의 근본적인 사명”이라며 즉위 후 두 번째 킹스 스피치의 말문을 열었다. 찰스 3세는 정권 교체에 성공한 노동당 정부가 14년 만에 작성한 국왕 연설에서 “선도적인 산업국가로서 영국의 입지를 강화하고 성장과 부의 창출을 촉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경 좌파였던 제러미 코빈 전 대표와 달리 친노동이자 친기업적 중도 좌파 노선으로 지지 기반을 넓힌 키어 스타머 총리는 경제성장, 재정 안정, 유럽연합(EU)과의 관계 재설정 등을 내세우고 있다. ‘기업 활동을 과도하게 위축시켜서는 안 된다’는 정책 기조도 마련했다. 스타머 총리는 “우리가 성장의 잠금을 풀고 영국의 브레이크를 풀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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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이 추진하는 ‘국가 쇄신’의 결과는 미지수다. 하지만 ‘부자 증세’와 같은 포퓰리즘 공약 대신 성장에 방점을 둔 실용주의 노선이 영국에 변화의 문을 연 것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입법 권력을 장악한 더불어민주당도 수권 정당이 되려면 말뿐이 아닌 진정한 성장론을 통해 성장·복지의 선순환을 일으키고 저성장 극복에 앞장서야 한다.

신경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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