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가 대(對)중국 수출 규제를 우회하기 위해 최신 인공지능(AI) 가속기 ‘블랙웰’의 중국 버전을 개발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엔비디아는 그간 미국의 반도체 수출 제재를 피하기 위해 중국 전용 칩셋을 내놓았는데 이 전략을 최신 칩셋에도 적용하겠다는 것으로 읽힌다.
21일(현지 시간) 로이터통신은 “엔비디아가 현재의 미국 수출 규제를 준수하면서 중국 시장을 겨냥한 최신 AI 칩을 개발 중”이라고 보도했다. 새 칩셋은 엔비디아가 올 3월 공개한 블랙웰의 중국 버전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로이터는 “엔비디아가 중국 내 주요 유통 협력사 중 하나인 인스퍼(Inspur)와 협력해 ‘B20’이라는 AI 가속기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전했다. B20이라는 이름은 이 칩셋이 모델명 ‘B200’인 블랙웰의 변형임을 방증한다.
엔비디아와 인스퍼는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는 않았으나 반도체 업계에서는 그간 보여준 엔비디아의 행보를 감안할 때 블랙웰의 중국 버전 출시 또한 예정된 수순이었다는 평가가 따른다. 2022년 10월 미 상무부가 중국을 상대로 한 미국 최첨단 반도체 수출 제재에 나선 후 엔비디아는 중국 전용 칩 제조에 힘써왔다.
엔비디아는 2022년 제재 뒤 블랙웰의 전 세대인 A100과 H100보다 성능을 30%가량 낮춘 A800·H800을 만들어 중국에 판매했으며 이후 지난해 말 제재가 더욱 강화돼 이 칩셋들의 판로가 막히자 중국향 신제품 H20을 내놓기도 했다.
중국 기업들은 성능이 상대적으로 낮은 ‘중국 전용’ 칩셋을 다량 구매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 7월에는 제재 확대를 앞두고 중국 내 A800 가격이 2주일 만에 20% 급등하기도 했다.
홍콩 등지를 경유한 우회 구입도 지속되고 있다. 중국은 물론 러시아까지 활용하는 방법이다. 이날 로이터는 미 상무부를 인용해 올 1~5월 홍콩을 경유해 러시아와 중국을 향한 제재 대상 첨단 부품이 각각 28%, 19% 줄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압박에 홍콩을 통한 ‘밀수’는 감소하고 있으나 여전히 홍콩은 중국과 러시아의 제재 회피 거점으로 남아 있다.
중국은 데이터센터에 쓰이는 AI 가속기 구매에 집중하는 반면 러시아는 엔비디아 에지(온디바이스) AI·자율주행에 주로 쓰이는 ‘젯슨’ 칩셋을 사모으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젯슨 칩셋이 공격용 드론 제조에 사용되고 있어서다. 글로벌 안보 비영리 단체 C4ADS에 따르면 지난해 8~12월 1760만 달러에 달하는 엔비디아 제품이 홍콩을 경유해 러시아로 흘러들어갔다고 한다. 미 상무부는 로이터에 “러시아의 전쟁 지속에 필요한 기술 및 기타 품목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며 “중국 또한 여전히 우리의 최우선 관심사”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