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여명] '사람'에 충성하는 검찰

'총장 패싱' 둘러싸고 검찰 내홍

중앙지검, 총장 무시는 '쿠데타'

'역사적 소환' 불구 과정 불공정

스스로 '정치검찰'로 낙인 찍어

'권력 감시' 존재 이유 망각해





“검찰총장 취임 때 ‘법불아귀(法不阿貴·법은 신분이 귀한 자에게 아부하지 않는다)’를 말씀드렸는데 이를 지키지 못해 국민께 죄송합니다.”



이틀 전 이원석 검찰총장이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으로 출근하면서 기자들 앞에서 한 말이다. 전날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에 대한 비공개 소환 조사 때 벌어진 이른바 ‘총장 패싱’에 대한 공식적인 첫 일성이었다.

‘법불아귀’는 법가 사상을 집대성한 책 ‘한비자’에 나오는 말이다. 이 한마디에는 권력자를 향해 검찰이 가져야 할 자세가 담겨 있다. 하지만 이번 소환 조사에서는 티끌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과 ‘명품백 수수’와 관련한 김 여사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은 노골적으로 총장을 건너뛰고 비공개 조사를 단행했다.

이 총장은 그동안 수차례 법과 원칙대로 대통령 부인이라 하더라도 검찰 청사로 불러 조사해야 수사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다고 대내외에 공언했다. 하지만 그는 정작 소환 조사가 시작된 지 10시간이 지나서야 통보나 다름없는 보고를 받았다.

현직 대통령의 영부인이 역사상 처음으로 소환돼 조사를 받고 있는데 검찰 수장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니. 사실상 중앙지검발 ‘검찰 쿠데타’나 다름없다.



도이치모터스 사건은 법적으로 보자면 문재인 정권 때 법무부 장관(추미애)이 검찰총장(윤석열)의 수사지휘권을 박탈해 지금까지 유지돼온 탓에 이 총장이 수사에 관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명품백 사건’은 엄연히 이 총장에게 지휘권이 있는데 이마저도 담당 수사팀으로부터 무시당했다. 아무리 임기가 두 달이 채 남지 않는 검찰 수장이라 하더라도 국민 관심이 집중된 사건에 대해 사전 허락은 제쳐두더라도 ‘귀띔’조차 하지 않은 것은 말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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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최대 규모 검찰청으로 ‘검찰의 꽃’이라 불리는 서울중앙지검에 소속된 수사팀이 보란 듯이 식물 총장으로 만들어버린 꼴이다. 어떠한 목적을 위해서는 지휘 시스템쯤은 언제라도 무시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했다.

문제는 또 있다. 김 여사에 대한 12시간 조사가 끝난 후 서울중앙지검은 기자단에 ‘당청 관할 내 정부보안청사’라는 알쏭달쏭한 말로 정확한 장소조차 적시하지 않은 채 소환 사실을 공지했다. 이후에도 끝까지 김 여사가 소환된 제3의 장소는 공표하지 않았다. 영부인 경호가 문제였다면 이미 조사가 끝난 뒤인데도 장소를 밝히지 않은 것은 무슨 속내인가.

조직 수장에는 보고도 하지 않고 국민들에게는 소환 장소조차 밝히지 않는 수사. 이런 검찰이 어떻게 공정한 수사를 했다고 평가받을 수 있을까. 김 여사에 대한 의혹은 법적으로 따지자면 ‘무혐의’ ‘불기소’로 막을 내릴 공산이 크다고 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절차와 과정은 정당하고 공정해야 국민적 불신을 최소화할 수 있는데 검찰은 이를 내던져 버렸다. 결국 살아 있는 권력에 고개 숙인 ‘법비’로의 전락이다.

결과적으로 야당이 밀어붙이는 ‘김 여사 특검법’을 막기 위해 서둘러 ‘보여 주기식 소환’에 그쳤다고 손가락질당해도 할 말은 없다. 김 여사뿐 아니라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야권 관련 수사가 즐비한 상황에서 검찰은 어떻게 공정함을 주장할 수 있을까.

더욱이 총장 패싱에 대해 검찰총장이 대검 감찰부를 통해 진상 조사를 지시하자 명품백 사건에 투입된 한 부부장검사는 이에 반발해 사표까지 제출했다. 기개인가 반항인가. 며칠 새 검찰 내에서 이해하기 힘든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검사들의 사내 통신망인 ‘이프로스’에는 관련된 의견이 한 건도 올라오지 않고 있다고 한다. 얼마 전 검사 탄핵안에 대해서는 비판의 글이 수없이 쏟아진 것과 비교하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윤 대통령은 여주지청장으로 있던 2013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박근혜 정권의 댓글 수사 외압을 폭로하며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대쪽 같은 말로 많은 이들에게 큰 울림을 줬다. 국민들은 “이게 바로 검사다”라며 카타르시스마저 느꼈다. 이 한마디가 불쏘시개가 돼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을 거쳐 대통령 자리까지 단박에 올랐다.

문득 궁금해진다. 서울중앙지검 김 여사 수사팀은 지금 과연 누구에게 충성하고 있는 것인가.

한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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