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시가 기술주 폭락으로 출렁이면서 아시아 증시도 반도체 종목을 중심으로 하락했다. 연초 글로벌 증시 상승을 견인했던 미국 대표 테크주 7종목, 일명 ‘매그니피센트7(M7)’을 중심으로 실적 쇼크와 시장 둔화 우려가 확산하면서 주요국 관련 종목을 끌어내렸다.
24일(현지 시간) 뉴욕증시에서는 3대 지수가 일제히 급락했다. 기술주 중심인 나스닥종합지수는 전장보다 654.94포인트(-3.64%) 내린 1만 7342.41로 마감했다. 이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 인상에 나선 2022년 10월 7일(-3.8%) 이후 1년 9개월 만에 일일 최대 낙폭이다. 대형 기술 기업들로 구성된 나스닥100 시가총액은 1조 달러(약 1384조 원)가량 줄어들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128.61포인트(-2.31%) 떨어진 5427.13에,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504.22포인트(-1.25%) 하락한 3만 9853.87에 각각 거래를 마쳤다.
이날 미국 시장의 부진은 기대치를 밑돈 빅테크들의 실적과 정치적 불확실성에 따른 경기 둔화 우려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전날 실적을 발표한 테슬라(-12.33%), 알파벳(-5.04%)이 큰 폭으로 하락한 가운데 엔비디아(-6.8%), 메타(-5.61%), 마이크로소프트(-3.59%), 아마존닷컴(-2.99%), 애플(-2.88%) 등 M7의 약세가 두드러졌다. 이들 종목의 시가총액은 하루에만 7680억 달러(약 1063조 원) 이상 증발했다. 고점이던 이달 10일 이후 2주간 줄어든 시총은 1조 7000억 달러(약 2353조 원)에 달한다. 시장에서 “AI 랠리를 굴러가게 하던 바퀴가 빠진 것 같다”(마켓워치)는 비명이 나온 이유이기도 하다. 노무라증권 애널리스트 찰리 맥엘리곳은 “테슬라와 알파벳의 실적은 시장이 M7 주식에 너무 의존해왔다는 우려를 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M7이 끌어내린 증시 하락을 두고 “‘매그니피센트7’ 대신 ‘비참한(Miserable) 7’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라고 진단했다. 시장 전체가 크게 흔들리면서 ‘공포 지수’로 불리는 시카고옵션거래소(CBOE) 변동성지수(VIX)는 이날 전장 대비 22.55% 급등한 18.04를 찍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그동안 랠리를 주도한 인공지능(AI) 열풍이 식어가는 신호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AI 버블 붕괴를 알리는 신호까지는 아니지만 주가와 실적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음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올스프링 글로벌투자의 네빌 자베리는 빅테크들의 AI 투자 결과물이 투자자들의 생각보다 늦게 나올 수 있다면서 “단기적으로 AI에 대한 피로감이 다소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추가 하락 우려도 남아 있다. 골드만삭스는 자체 분석을 통해 이번 증시 부진으로 다음 주 지수 방향과 무관하게 추세 추종 펀드(CTA)들에 미국 주식 매도 신호가 떴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다음 주 증시 부진이 계속되면 이들 펀드가 미국에서 79억 달러(약 10조 9000억 원)를 비롯해 세계 증시에서 329억 달러(약 45조 6000억 원)를 뺄 것으로 전망했다. 지수가 상승해도 미 증시에서 9억 200만 달러 규모를 매도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투자회사 베어드의 로스 메이필드 전략가는 그동안의 과매수 장세, 투자자들의 높은 실적 기대감, 계절적인 약세 요인이 겹쳐 ‘퍼펙트스톰’이 만들어졌다고 진단했다. 다만 그는 “강세장 속의 건강한 조정은 오히려 저가 매수 기회로 볼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미국 시장의 영향으로 아시아 증시도 일제히 하락했다. 일본 닛케이225지수는 전날보다 1285.34포인트(-3.28%) 빠져 지난달 17일 이후 처음 3만 8000선 아래로 내려갔다. 르네사스가 시장 전망치를 하회하는 실적을 발표한 뒤 13.62% 급락했고 도쿄일렉트론(-5.02%), 어드밴테스트(-6.04%) 등 다른 반도체주도 약세를 보였다. 이 밖에 홍콩 항셍지수(-1.65%), 상하이·선전증시 시가총액 상위 300개 종목으로 구성된 CSI300지수(-0.55%)도 동반 하락했다. 대만 증시는 태풍으로 휴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