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와 관련해 한일 양국이 조선인을 포함한 노동자들의 근로 역사를 현지에서 전시하는 한편, 등재 여부를 결정할 세계유산위원회에서도 이들 노동자의 존재를 표명하기로 합의했다는 일본 언론 보도가 나왔다. 그동안 사도광산 등재를 둘러싸고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 노역 내용 반영을 주장하는 한국과 이를 배제하려는 일본의 갈등이 이어져 왔다. 다만, 한국 측 요구의 핵심인 ‘노동의 강제성’을 어떻게 표현하고, 설명할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의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유산위원회는 26~29일 인도 뉴델리에서 사도광산을 비롯한 신규 등재 안건 28건에 대한 심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26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한일 정부는 유네스코 자문기관 중 하나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이코모스·ICOMOS)가 지난달 일본 측에 정보조회를 권고한 이후 물밑 협의에 들어갔다. 이코모스는 사도광산에 대해 “등재될 만한 가치가 있다”면서도 여러 지적 사항을 붙여 ‘보류’에 해당하는 정보조회를 권고했다. 정보조회는 등재 신청을 한 대상국에 추가 정보를 제출하게 한 다음 재심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코모스는 당시 추가 권고 항목을 통해 “전체 역사를 현장 수준에서 포괄적으로 다루는 설명·전시 전략을 책정해 시설 및 설비를 갖추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일본 언론에서는 “최근 ‘정보조회’ 권고를 받은 경우 그해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등록이 인정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며 이달 심사에서의 등재 결정 가능성을 높게 점쳤다.
일본은 사도광산을 세계유산으로 신청하면서 유산 시기를 에도시기가 중심인 16∼19세기 중반으로 한정해 일제강점기에 벌어진 조선인 강제노동을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도광산에는 2000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조선인이 태평양전쟁 기간 일제에 의해 동원돼 강제노역했다.
아사히는 “윤석열 정부 출범으로 한일 관계가 개선되는 가운데 일본 정부는 한국 측 요구에 일정 수준 접근하겠다는 방침을 정하고, 한반도 출신 노동자의 존재를 현지 전시에서 소개하고, 세계유산위에서 이 같은 입장을 표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국이 주장해 온 ‘강제 노역’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할지에 대해서는 한일 정부가 여전히 논의 중이라는 게 아사히의 설명이다. 노동의 강제성을 설명하는 부분은 한국이 시종일관 강조한 ‘전체 역사 반영’에서도 핵심에 해당한다. 이 부분에 대한 일본의 수용 여부가 아직 결정되지 않은 만큼 한국 정부가 등재에 동의할 수 있는 요건이 충족됐다고는 볼 수 없다.
실제로 일본은 2015년 하시마(端島, 일명 ‘군함도’) 탄광 등 근대산업시설이 세계유산에 등재될 때 조선인 강제노역을 포함한 전체 역사를 함께 알리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이에 한국 정부는 이번 사도광산 건에서는 약속 이행을 담보할 확실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태도를 보여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