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 미국 증시 상승을 이끌었던 기술주들의 최근 급락세가 실적 쇼크 외에도 엔화 가치 상승(엔고)과 연관돼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기술주 투자와 엔화 가치 하락(엔저)에 동시 베팅하던 헤지펀드들이 급격한 엔고에 손실이 나자 기술주를 매도해 주가를 끌어내렸다는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5일(현지 시간) “최근 엔화 급등과 같은 시기 기술주의 하락은 우연이 아니다”라며 이같이 밝혔다. FT에 따르면 헤지펀드들은 최근 몇 년간 기술주 투자와 함께 엔저 현상을 이용해 엔화 쇼트(매도)에 동시 베팅해왔다. 그러던 중 미국이 금리를 인하하고 일본이 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관측이 최근 확산하면서 금리가 낮은 일본의 엔화를 빌려 금리가 높은 나라의 자산(달러)에 투자하는 일명 ‘엔캐리트레이드’ 청산 움직임이 나타났다. 이 같은 조짐에 엔화 매도가 진정되면서 엔고 현상이 나타났다. 상황이 반전돼 한쪽 전략(엔저 베팅)이 흔들리면서 헤지펀드들은 다른 수익성이 높은 포지션(기술주)을 청산해 손실을 방어하게 됐다는 게 FT의 설명이다.
실제로 엔·달러 환율과 기술주의 주가 그래프는 함께 움직이는 모습을 보였다. 미국 기술주를 추종하는 나스닥지수는 0.93% 하락하며 사흘 연속 하락세를 보였다. 같은 날 엔·달러 환율은 하락(엔화 가치 상승)하며 뉴욕외환시장에서 장중 달러당 151.94엔으로 2개월 반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FT에 따르면 이달 11일 이후 약 2주간 달러 대비 엔화 가치는 5% 이상 올랐고 같은 기간 나스닥은 7% 가까이 떨어졌다. 엔화 가치가 오르기 시작한 것은 11일 발표된 미국 6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3개월 연속 둔화하며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9월 금리 인하론에 힘이 실렸기 때문이다. 미국 금리가 떨어지면 일본과의 금리 격차가 줄어들어 양국 금리 차를 겨냥한 캐리트레이드(엔화 매도) 수요가 감소한다.
일본의 금리 인상 기대감까지 더해지며 엔화 강세에는 더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이달 30~31일 일본은행(BOJ)의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앞두고 시장에서는 추가 금리 인상 단행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이 금리 인상의 전제로 꼽는 ‘물가 상승률 2%의 안정적·지속적 실현’ 가능성이 커졌다는 평가가 잇따르는 게 주된 배경이다. 일본의 6월 CPI(신선식품 제외)는 전년 동월 대비 2.6% 상승하며 27개월 연속 2%를 웃돌았다. 여기에 집권 자민당과 내각 핵심 인사들의 엔저 견제 발언도 더해지고 있다. 당 차기 총재 후보군인 모테기 도시미쓰 간사장과 고노 다로 디지털상은 최근 잇따라 정책금리 인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일본의 정책 금리는 무담보 콜금리 익일물 기준 ‘0~0.1%’로 현재 이를 0.25%로 올리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