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3·4호기 시공사를 상대로 한 33억원 규모의 시공사 하자 일부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패소했다. 시공사들의 책임은 있지만 한국전력기술의 손해배상 변제로 채무가 소멸했다는 것이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5부(김경수 부장판사)는 한수원이 현대건설(000720), 두산에너빌리티(034020), SK에코플랜트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이달 17일 “원고의 피고들에 대한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고 판결했다.
한수원은 지난 2006년 신고리 3·4호기 주설비 공사의 종합설계용역계약을 한국전력기술과 체결하고 이듬해 현대건설 등과 계약금 8000억원 규모의 도급계약을 맺었다. 문제는 시공사들이 공사한 소화배관 옥외매설에 나왔다. 시공사들은 소화배관을 HDPE 배관으로 설계하고 공사를 마무리해 구역별로 3차례에 걸쳐 이를 한수원에 이관했다. 이후 한수원이 해당 배관에 관한 세정작업 및 시운전을 실시한 과정에서 총 16회에 걸친 매설 배관 파손에 의한 누수가 발생했다.
한수원은 시공사들에게 배관을 기존 HDPE 배관에서 SUS 강관으로 교체하도록 요청했고 이로 인해 증액된 계약금 132억여 원을 모두 지급했다. 한수원은 2018년 9월 대한상사중재원에 한국전력기술과 시공사들을 상대로 손해배상금을 청구했다. 중재판정에 따라 손해배상금 132억 원 중 30%에 해당하는 39억 6700만 원을 한국전력기술에 받았다. 그러나 시공사들에 대해서는 중재합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중재신청이 각하됐다. 이에 한수원은 “시공사들이 주의를 다하지 못해 누수 원인을 제공했다”며 손해배상으로 33억 7100만 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시공사들의 잘못으로 하자가 발생해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는 것에는 동의했다. 재판부는 “시공사들이 배관 설치 공사를 하면서 인증기준을 만족하지 못하는 자재를 사용했고 융착부를 불량하게 시공했다”며 “한수원의 시운전상 과실이나 한국전력기술의 설계상 오류 등과 경합해 누수 발생의 한 원인이 됐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한국전력기술이 중재판정에 따라 한수원에 약 40억 원을 지급해 시공사들이 부담해야 할 채무가 모두 소멸했다고 판단했다. 한국전력기술과 시공사들 사이에 ‘부진정 연대관계’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부진정 연대채무란 여러 명의 채무자가 동일한 내용의 급부를 목적으로 하는 채무를 부담하고, 그중 한 사람 또는 여러 사람이 채무를 이행하면 모든 채무자의 채무가 소멸하는 다수 당사자의 채권관계다. 재판부는 “한국전력기술의 변제로 인한 채무소멸의 효력은 부진정 연대관계에 있는 시공사들의 한수원에 대한 손해배상채무에도 미친다”며 “결국 시공사들이 한수원에 부담하는 손해배상 채무도 모두 소멸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노종언 법무법인 존재 대표변호사는 “부진정연대채무는 피해자 보호를 위해 있는 제도”라며 “이를 테면 공동책임이 있는 세 명 중에 아무에게나 총 손해액을 받으면 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다만 노 변호사는 “만약 한수원이 항소를 해 전체 손해배상액을 더 크게 인정받을 경우 시공사들에게도 배상을 받을 기회가 생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한국전력기술은 시공사들을 상대로 중재비용을 제외한 구상금 45억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해 현재 소 진행 중인 상태다.